그래 이곳이야! 이곳이 예전에 요한계시록의 서머나교회가 위치해 있던 곳이 아니었을까? 이즈미르(서머나) 시내 지도에 명시된 이 유대인 회당을 첫째 목적지로 삼았다. 센트럴 역에서 걸어서 20여분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였다. 고대 아고라 발굴지는 큰 길가에 있었지만 유대인 회당은 큰 길을 건너편의 미로와 같은 골목길의 끝나는 곳에 있었다. 적어도 지도상의 위치는 그랬다. 그래서 지도를 들고서 걸어서 헤매기 시작했다. 지도상의 유대인 회당 주변 골목길은 전부 재래시장이었다. 미로와 같이 굽고 좁은 골목길은 너무 좁아서 차는 못 들어 오고 시장에 물건을 사러 온 사람들로 북적대었다. 길의 좌우를 메우고 있는 상점들… 상점들의 좌판이 좁은 골목길의 거리까지 침범했다. 옷 가게도 있는가 하면, 과일가게, 생선 가게 및 쌀과 빵을 파는 가게들로 다양했다. 와중에는 다양한 골동품을 파는 가게들도 있어서 나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가격이 궁금하여 걸음을 멈추고 가격을 물으면 손가락을 펴서 가격을 알려주면서 손님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팔을 잡아 다닌다. 아무리 팔을 잡아 끌어도 이제 여행의 시작으로 짐이 되는 물건들은 사 줄 수가 없었다. 물어 본 것이 미안해도 뿌리칠 수 밖에 없었다. 그냥 이스탄불과 비교하여 생필품이 얼마나 더 싼지 가격만 궁금하여 물어본 것인데…
그런데 아무리 빙빙 돌아도 찾고 있는 유대인 회당은 나오지 않고 그 가게가 그 가게, 그 길이 그 길인 것 같다. 한30분은 땀을 뻘뻘 흘려가면서 찾다가 거의 포기한 상태에서 눈앞에 보이는 베이지색 건물과 눈높이 보다 훨씬 높은 창문들 그리고 양 옆으로 열리는 철문 위의 사인 – Algaze Synagogue (알가제 회당)– 건물은 특징이 없어서 Synagogue 라는 사인이 없었으면 그냥 지나칠 뻔 했다. 자세히 봐도 문지방에 유대인 표식인 두루마리 형상이 없다. 그래도 Synagogue 란 표현을 쓰는 곳은 지구상에 유대인회당이 유일하다. 그러나 안에 들어가 보고 싶어서 지구 반대편에서 달려온 내 바람을 무색하게 하는 문에 걸린 자물쇄가 길을 막는다. 무슬림 거주지의 재래시장 한가운데 위치한 평범한 유대인 회당이다 보니 안전을 생각하여 창문도 높이, 그리고 철문도 잠겨있는 것 같다. 혹시나 해서 문을 두드려 보았지만 나오는 사람은 없었다. 찾아 헤맨 것이 억울하여 한 15분 회당 앞에 서성거리면서 기다려 보았지만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골목 안의 개들만 이상한 사람이 왔다고 시끄럽게 짖어 대었다. 기다리다 못해 그냥 건물의 사진만 찍고 철수하고 말았다. 따라서 아직도 이즈미르에 남아있는 유대인들이 금요일 저녁이면 회당에 모이는지는 잘 모른다. 또한 건물만 보고는 유대교 회당인지 아니면 기독교 교회인지도 잘 모르겠다. 언제 지어진 건물인지도 잘 모르겠다. 우리가 아는 그리고 내가 찾는 2천년전 서머나 교회의 흔적은 이즈미르에서 이미 오래 전에 사라져 버린 것으로 보인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계시록에 언급된 서머나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기독교인들의 공동체이다. 2천년이나 시간이 지난 후에 서머나 교회의 흔적을 찾아보겠다고 유대인 회당을 두드려 보는 것이 맞는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이번 컨셉을 잘못 잡았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시간을 초월하여 2천년전 기독교인들이 걸었던 같은 공간을 걸어본다는 데 의미를 둘까?
다시 큰길로 나가려 하는데 골목길을 막고 있는 이 사람들은 무엇인가? 대 여섯 명의 청년들이 등을 돌린 채 (아마도 메카의 방향이 등을 돌린 방향이라서 그랬을 것이다) 좌우로 늘어 앉아서 길을 막고서 엎드려 절을 하고 있었다. 분명히 공공의 길을 막고 있었지만 그들을 뚫고 나의 길을 갈 만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나란히 보자기를 펴고 신발은 벗어서 보자기 뒤에 놓고서 그 위에 엎드리는 것이다. 아단의 기도를 촉구하는 노래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무슬림의 기도시간이었다. 이러한 모습은 그 이후에도 찾아간 아고라 골목길에서 또 다시 발견한다. 길을 가던 일반 남자 시민들이 길가에 나란히 앞뒤로 30여명 빼곡히 앉아서 아단에 맞추어서 기도를 하는 것이다. 수도 이스탄불에서는 못 보던 풍경이다. 확실히 이스탄불에서는 자유분방한 분위기가 풍겨나더니 시골로 나오니까 종교적인 색채가 강하다. 길거리에서 서로 경쟁적으로 각자의 종교성을 자랑하려는 모습들을 보게 된다. 이슬람 모스크마다 깍은 연필의 모습과 같은 뾰죽한 타워에 아단을 알리는 스피커가 붙어있는데 골목마다 어김없이 하나씩 보인다. 이곳에서 하루 5번씩 기도시간을 알리는 아단의 노래 소리가 들려온다. 듣기 싫어도 들어야 한다. 이천년 전에 예수님에게 믿음에 대한 칭찬을 받으면서 생명의 면류관을 약속 받았던 서머나 교회가 있던 자리에서 이제는 이렇게 이방종교로 가득 찬 모습을 보는 것이 참으로 서글펐다.
큰길 건너서 아고라를 찾아 보아야 했지만 점심때가 넘어서인지 배에서 소식이 들렸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터키식 고등어 케밥을 먹으러 식당을 찾아 나섰다. 여행의 즐거움 중의 하나는 맛있는 로컬푸드를 찾아서 먹는 것 이다. 사실 고등어 케밥은 싸구려 음식이다. 고등어를 뼈를 발라내어 그릴에 굽고 야채와 함께 쫄깃한 빵에 싸서 먹는 것이다. 이스탄불의 대리점 방문 때는 손님이라고 그런 싸구려음식은 근처에도 데려가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작년의 터키방문에서 잊지 못할 음식이 고등어 케밥이다. 지도를 보고서 그리 멀지 않은 이즈미르의 명물 클락타워를 찾아 갔다. 항구가 멀지 않은 클락타워를 주변에 식당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한 20분을 걸으니 바다가 보이면서 클락타워가 눈에 들어왔다. 예상대로 주변에 식당들이 즐비하게 있다. 찾으니 고등어케밥 집도 있다. 불과 4리라(2불)밖에 안 된다. 노천의 식탁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싸고도 맛있는 고등어케밥을 천천히 즐겼다. 비린 고등어 점심을 먹으니 진한 커피가 한잔 절실히 생각이 났다. 그러나 커피는 장소를 옮겨서 운치 있는 바닷가 고급식당으로 가기로 했다. 에게 해의 풍경이 보이는 위치에 지붕을 씌어서 바다냄새와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자리에 앉았다. 커피 한잔의 가격이 점심 한끼보다 두 배나 더 비쌋다. 그러나 느긋하게 파란 바다를 바라보면서 바닷바람을 맞는 기분이 여행은 이런 맛이다.
이제 아고라(Agora) 발굴터와 산위의 알렉산더 성채를 가 보는 일이 남았다. 왔던 길을 되돌려 아고라로 돌아갔다. 아고라는 먼저도 언급했듯이 예전 희랍시대의 시장이면서 시민들이 모여서 토론도 하고 시국도 논의하는 시민회관이었다. 아고라 발굴터에는 예전에 마을 회당이 있었던 듯 지붕 없는 기둥들을 줄 맞추어 복원해 놓았다. 서머나(Smyrna) 라는 도시 이름은 희랍시대 이전의 히타이트 시대부터 붙여졌던 이름이다. 발굴자에 의하면 이 도시는 8,500년이 되었다고 한다. 포세이돈과 데메테르의 부서진 상등도 발견할 수 있다. 희랍의 대표적 희곡 ‘일리아드’와 ‘오뎃세이아’란 작품을 쓴 작가 호머(Homer)가 서머나 출신이라고 한다. 주전 1세기경 무너져가던 서머나를 다시 일으켜 도시의 형대로 만든 사람은 알렉산더 대왕의 명을 받은 두 장군이라고 한다. 로마시대에 와서는 에베소, 서머나 및 버가모등 3개의 항구도시가 서로 경쟁적으로 항구로서의 아나톨리아 무역을 담당했었다 한다. 3개의 항구도시가 모두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7개의 교회에 속한다.
아고라 입구에서 나와서 파구스의 언덕에 있는 성채를 올라가 보기로 했다. 아래서 보니 멀리 옛 성채에 커다란 터키 국기가 펄럭이는 것이 보이는데.. 문제는 어떻게 올라야 하는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산으로 향하는 방향에는 언덕에 세워진 몇 백년은 되어 보이는 조그마한 집들이 우후죽순 생겨 났는데 위로 오르는 정확한 길이 없었다. 어디로 갈까 하고 망서리는데 8-9세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들 4명이 쭈삣쭈삣 다가와서는 터키어로 내게 뭐라고 한다. 내가 사진기를 꺼내어 찍겠다고 하니 뻣뻣한 차렷 자세와 어깨동무의 자세를 취해준다. 대부분 관광지에서의 이 나이또래의 아이들은 관광객들을 어떻게 속여서 돈을 뺏어볼까 하는 산전수전 다 겪은 얼굴들이 드러나는데 서머나에서 만난 이 아이들은 아직은 때묻지 않고 순진한 아이들이다. 내가 산 위를 손가락으로 가르치며 어떻게 오르느냐는 모션을 취하자 자기들을 따라 오란다. 그러더니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는 아랑곳 없이 자기들끼리 낄낄대며 열심히 달려가다 내가 생각난 듯이 뒤돌아서 기다린다. 나도 뒤쳐질라 열심히 뛰는 듯이 이 아이들을 쫓아갔다. 골목길을 구불구불 올라가는데 아이들의 도움 없이는 오른 길을 다시 되돌아 내려가기는 힘들 정도로 이미 길을 잃었다. 나도 걷기를 좋아하여 기회 있을 때마다 걷지만 구불구불 오르막길을 아이들과 페이스를 함께 하려니 숨이 가빠온다. 앞을 보면 아직도 올라가야 할 길이 더 남았지만 뒤돌아보면 서머나 만과 만의 건너편에 도시가 파란 바닷물과 어우러져서 멋진 풍경이 나타난다. 역시 힘들여 산 위로 올라오기를 잘 한 것 같다. 탁 트인 바다와 시원한 바람에 눈 아래 보이는 멋진 이국적인 풍경이 모든 땀을 씻어준다.
벌써 오후 4시이다. 센트럴 역의 택시회사 앞 식당에 들어가서 지도를 폈다. 이제는 북쪽을 향하여 버가모를 향해 가느냐 또는 남쪽으로 에베소를 향하느냐 목적지를 결정해야 한다. 버가모를 가게 되면 렌터카로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까지 돌아보고서 이후 에베소를 향하면 된다. 그러나 서머나에서 경험한 것처럼 옛 교회의 흔적을 찾는 일이 만만치 않다. 단순히 옛 희랍시대의 유적지를 돌아보는 것이라면 에베소 한군데에만 가도 희랍시대 유적지를 질리도록 볼 수 있다. 또한 터키에서 차를 직접 몰고서 길을 찾아 다니는데 부담이 된다. 기차를 타고 남쪽 에베소를 향할까? 또는 차를 빌려서 북쪽 버가로로 향할까? 고민을 하다가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는 이번에는 그냥 지나치기로 하였다. 가파른 산 위에 세워진 난공불락의 도시 버가모는 800년 동안 종합병원으로 사용됐던 아스클레피움 유적이 있다고 한다. 아스클레피움 한가운데는 맑은 물이 흐르는 분수대가 설치돼 있고 동쪽에는 지하 원형 치료소 흔적이 남아 있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많은 환자들이 이곳을 찾아 목욕과 진흙 마사지, 맨발 걷기, 약재 처방, 식사 조절 등의 치료를 받았다 한다. 또 북쪽에 설치된 야외 극장에서 연극과 음악을 이용한 심리치료도 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버가모는 우상을 숭배하는 신전이 있는 도시였다. 그래서 버가모 교회의 성도들 가운데는 거짓된 가르침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버가모가 우상의 도시였기 때문에 버가모 교회 성도들은 핍박을 당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믿음에 굳게 서 있는 것으로 칭찬을 받았다. 그렇지만 성도들 가운데 거짓 교회에 물든 사람들이 있어, 교회 안에는 우상을 섬기는 짐승이 들어 와 있게 되었다. 그들은 우상의 제물을 먹기도 하였으며 간음하는 죄를 저질렀다. 예수님께서는 버가모 교회를 향해서 회개하라고 권면하셨다.
에베소를 가서 하루를 잡고 충분히 돌아본 후 다음날 펙키지 여행으로 온천으로 유명한 파묵칼레를 가는 길에 빌라델비아와 라오디게아를 들러보는 것으로 여행일정을 정했다. 온천 물이 나오는 파묵칼레는 라오디게아 근교이다. 이곳 온천이 체온과 비슷한 온도이기에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차지도 아니하고 덥지도 아니하다는 비유를 들은 것 같다. 에베소는 이제 사람이 살지 않는 옛 도시이고 유적 발굴지 이기에 기차를 타고 옆에 붙은 셀축(Selcuk)이란 신도시를 찾아가야 한다. 쎌축은 기차를 타면 아까 내렸던 비행장을 거쳐서 남쪽으로 한 시간을 더 달린다. 기차는 중간에 역이 나올 때마다 서지만 기차 시간표대로 시간은 대체로 잘 맞춘다. 좌우로 옥수수 밭과 올리브 나무들을 지나치면서 시간표의 역 이름과 시간을 대조하면서 달리다 보니 어느새 셀축에 도착이다. 셀축에 내려서는 이즈미르에서 미리 hotels.com으로 예약을 했던 호텔을 찾았다. 역에서 불과 한 블럭 5분 거리였다. 호텔 이름은 Efes Antik Hotel 이다. 이 호텔을 예약하게 된 이유는 이즈미르에서 호텔 사이트에 들어갔더니 호텔이용자 리뷰가 좋았다. 다양한 여행객들이 있었지만 한국에서도 벌써 여러 명의 여행자들이 이 호텔을 거쳐가면서 좋은 리뷰를 써 놓은 것이다. 과연 말대로 맞아주는 주인 아저씨가 영어도 수준급에 매우 친절하고 주변 여행지에 대한 좋은 조언을 받았다. 한국인들에게 과잉 친절이다. 카운터 옆에는 한국아가씨들이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면서 포스터용지에 한글로 감사함을 빼곡하게 적어놓은 것도 붙여놓았다. 태극기도 걸어 놓았다. 이곳에서 한글 포스터를 볼 줄이야.. 주인 아저씨의 도움으로 여행지의 많은 정보를 얻었다. 다음날은 에베소를 가이드 없이 직접 돌아보고, 그 다음날은 쎌축에서 버스로 떠나는 관광 펙키지로 파묵칼레를 다녀오기로 계획을 수정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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