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은 동남아를 출장 다니며 중국의 교회와 선교의 움직임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보고 듣고 느낀 것이다. 전문적으로 연구하시는 선교사님들과의 다른 시각일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는 개인적 견해임을 전제한다. 지난 3월에 수처리 전시회를 위해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프르를 갔을 때다. 마침 본 교회 단기선교팀이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의 메단(Medan)에서 사역하시는 김모세 선교사님 사역을 돕고자 메단을 방문한 기간과 겹치는 기간에 나는 말라카 해협건너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프르에 있었기에 주말을 이용하여 선교팀에 합류하기로 하였다. 수마트라는 말레이시아 반도와 말라카 해협으로 갈라져 있다. 나라는 달라도 가까운 거리이다. 쿠알라룸프르에서 메단까지 비행거리는 불과 45분밖에 안 된다. 이 정도로 가까운 거리의 메단에 주말을 이용하여 본교회 선교팀과 합류하였다.
메단에서 사역하시는 김모세 선교사님은 이미 메단에서 20년가까이 사역을 하셨기에 현지어에 아주 능통하시다. 인도네시아에 현지교회를 개척하여 유창한 인니어로 사역을 하시는데 인도네시아 현지인 교회가 매우 활기가 넘쳤다. 찬양을 하는 현지인 찬양팀들과 교인들의 얼굴에도 기쁨이 넘치고 예배에 생명력이 넘쳐난 것을 목격하였다. 예배 후에 같이 식사를 나누면서 반갑다고 음식을 가져다 주고 말을 붙여주는 인도네시아 현지인들이 매우 살가웠다. 이것은 바다건너 말레이시아에서는 어림도 없는 광경이다. 두 나라의 다수가 무슬림 인 것은 같지만 말레이시아는 현지 말레이인 들에게는 이슬람 이외의 종교는 허용이 안 된다. 물론 말레이시아는 중국인이나 인도인들에게는 종교의 자유를 허용한다. 그러나 본토 말레이 인들에게는 이슬람 이외의 종교를 허락하지도 않고 타 종교의 말레이 인을 향한 선교나 전도 등에도 엄격하게 감시를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경제적으로 잘 사는 말레이시아 인들보다는 가난하지만 종교의 자유가 허용되어 기독교 선교사가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고 현지인 교회들이 만들어지고 공적인 장소에서 마음껏 하나님을 예배하는데 거리낌이 없는 인도네시아의 영적상황이 훨씬 더 바람직해 보였다.
이번에 수마트라의 메단을 방문하였을 때 김모세 선교사님의 소개로 인도네시아에서 물탱크 사업을 하고 있으며 인도네시아 중국교회 연합회회장이라는 빡 다르만 장로님과 부인인 이브 류숙의 집에서 일박을 한 적이 있다. 단기 선교팀은 사역을 위해 먼 지역으로 떠나고 나는 다음날 말레이시아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이분들은 개인주택의 지붕이나 옥상 등에 설치하는 물탱크 사업을 하면서 돈을 많이 벌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화교 부부였다. 그러나 그분의 큰 집은 메단을 거쳐가는 수 많은 기독교인들을 위해서 개방된 집이었다. 안내된 게스트룸에는 손님을 위한 정성이 엿보였고 거쳐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 방명록을 읽는 것도 흥미로웠다. 그 집을 거쳐간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빡빡한 방명록에 써 놓은 글들이 대부분 인니어와 중국어였지만 영어로 쓰인 것만 골라도 열 댓 개는 되었다. 부인인 이브 류숙과 빡 다르만 장로부부는 매우 신실한 하나님의 종들이었다. 다르만 장로는 영어는 유창하지 않아도 소통은 할 수 있었기에 밤 늦도록 얘기를 나누었다. 사실 알고 싶은 것이 많은 내가 붙잡고 놓아주지를 않은 것이다.
내가 지난 20여년간 동남아 여러 나라를 숫하게 다녀 봤고 현지교회들도 많이 방문 해 보았지만 한국인 외에 베풀기를 원하고 사용되기를 원하는 현지 기독교인은 거의 찾기 힘들었다. 동남아 교회들은 선교사들을 통해 받는 것이 습관이 되어서인지 베풀기에는 인색하다고 느꼈었다. 그러나 베풀기를 즐겨 하는 이들 부부는 참으로 귀한 분들이다. 화교출신 기독교인들 중에는 이렇게 베풀기를 즐겨 하는 분들이 있다. 혹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 나중에 메단에 갈 일이 있으면 이분 댁에서 일박해도 좋을 것 같다. 또한 화교 교회에도 새벽기도가 있다는 것을 그 집에 일박하면서 처음 알았다. 새벽에 일어나서 아래층에 내려가니 일하는 가정부외에는 아무도 없는 것이다. 가정부가 나와 말이 안 통하니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흉내를 내서 기도하러 간 줄 알았다. 나와 대화하느라 늦게 잠을 청했을 텐데.. 말뿐이 아니라 실지로 기도하는 신실한 종이다. 그 집의 응접실에서 발견한 중국인 예수와 12제자들의 흥미로운 그림이 있어 사진을 찍었다.
여기서 빡 다르만 장로님에게도 듣고 이후 다른 곳에서 재 확인된 얘기이다. 시진핑 정부가 들어서면서 중국의 지하교회에 대해서 다시 검토를 했다고 한다. 중국에는 정부에서 인정하는 표면적인 삼자교회와 핍박을 받고 음지로 숨은 지하교회가 있다. 물론 삼자교회는 정부가 주도하기에 “중국에도 기독교 교회가 있다” 보여 주기식 교회이다. 중국은 지금까지 지하교회를 핍박하였다. 무시 못할 숫자의 지하교회가 계속 성장하여 공산당 정권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하교회 교인들의 정치세력화가 은근히 두려웠을 것이다. 그 동안 숫하게 지하교회를 삼자교회로 이끌어 내어 지배하려는 중국정부의 노력이 실패했다. 신실한 기독교인들이 복음이 없는 형식적인 삼자교회와는 엮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정권의 후원을 받는 삼자교회는 도태되고 강력하게 핍박 받은 지하교회는 오히려 끈질기게 성장하여 이제는 일억이 넘는 성도의 거대한 세력이 되었다. 이제 자본주의경제로 옷을 갈아입은 중국 공산당은 지하교회를 오래 두고 보아도 정치세력화 되지 않고 오히려 사회에 긍정적 효과를 끼친다고 판단하게 되었다 한다. 사실 대부분 중국 지하교회는 진리를 추구하면서 매우 소박한 삶을 살아간다. 이러한 중국 지하교회를 현 시진핑 정권이 들어서고부터 더 이상 핍박하지 않는다. 핍박을 이기고 성장한 풍부한 영성의 중국 교회에 이제 봄이 왔다.
그러나 그 동안 중국의 개혁개방 및 1990년 북경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중국에 들어갔던 한국 선교사들은 기독교가 핍박 받는 환경에서 드러내지 않고 활동을 해 왔다. 중국정부는 이들의 정체와 동향을 파악만 하고 한국과의 관계를 중시하여 그냥 두고 보았는데 교회 핍박을 중단한 지금 외국세력이 더 이상 중국교회에 영향력을 미치는 것을 중단시키기 위해 추방하기로 결정하였다 한다. 추방보다는 선교사들이 중간에 한국을 방문하려 출국을 하면 이후 입국거부로 자동적으로 입국을 막는 것이다. 모든 한국출신 중국 선교사들이 갑자기 하루아침에 사역지를 잃은 것이다. 이들 선교사들은 대부분 10년이상 15년정도의 사역을 한 선교사들로 중국문화/중국언어에 능통한 선교사들이고 숫자는 500명 전후로 파악되고 있다. 대부분 선교사들이 한곳에서 10년 넘게 사역을 하면서 그 사역과 관련된 현지인들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다. 그리고 현지인들은 재정권을 가진 선교사들에게 매우 의존적이 된다. 지속적으로 선교사를 통해서 들어오는 후원금도 개 교회의 재정자립 노력을 방해한다. 이러한 관계가 건강한 교회로서의 자립하려는 노력을 막는 요소가 된다. 아마도 하나님은 이제 중국에서 순풍이 부는 중국교회가 더 이상 의존적이 되지 않게 하려고 선교사들을 추방하는가 보다.
그런데 내 생각에는 이것도 하나님의 섭리인 것 같다. 오랜 기간 한곳에서 현지인들에게 크나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에 익숙하던 사람들을 갑자기 사역지에서 쫓아 내심으로 선교의 주역이 선교사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에게 다시 한번 상기시키신다. 1945년 중국이 공산화 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에 중국에서 사역하던 수많은 서구 선교사들이 모택동의 선교사 추방정책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중국을 떠나면서 중국에 남겨놓은 8백만여명의 기독교인들이 공산정권 하에서는 자생력을 잃고 기독교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선교사 없는 중국의 복음화는 이제 끝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중국이 개방을 하면서 들어가보니 핍박을 피해 지하로 숨어 들은 기독교는 100배의 큰 부흥을 하여 8천만 교인의 지하교인들이 만들어진 것을 목격하였다. 이제는 중국의 지하교회가 1억이 넘는다. 선교의 주역은 선교사가 아니라 하나님인 것을 중국 땅에서 증명이 된 것이다. 그리고 중국의 지하교회는 세속에 때묻지 않고 순수하다. 진리를 추구하는 소박한 삶을 살아간다. 선교에 대한 열정도 대단하다. 이제 중국교회에 대한 핍박의 빗장이 풀리면서 또 한번 선교사에 의지하지 않고 중국교회 스스로 서게 하려는 하나님의 섭리인 것이라고 생각된다. .
때마침 빡 다르만 장로님이 회장으로 계시는 인도네시아 중국교회 연합회에서 한국 선교사의 추방 소식을 듣고서 이 한국인 선교사들을 어떻게 도울까 고민하다가 만다린 언어에도 능통하고 만다린어로 설교를 할 수 있는 이들을 인도네시아 중국교회 설교사역자로 초빙하는 방안을 생각하게 된다. 400여명이나 되는 이들을 인도네시아 중국교회에서 다 초빙 할 수 있을는지는 잘 모르지만 현재로는 인도네시아 내의 200여개 중국교회에서 200여명의 선교사들을 3년간 설교자로 초빙계획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기회는 한국 선교사들이 인도네시아 중국교회에 선교의 열정을 일으키고 비전을 제시하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인도네시아 중국교회는 인도네시아 외환위기 당시 중국인들을 공격하고 중국인 집을 불사르던 인도네시아 현지인들에게 심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중국인 교회는 현지인들에게 마음을 열어서 전도를 하고 선교를 하고 인도네시아 현지교회와 교류하려는 마음이 닫혀있다. 서로가 한 공간에서 살아가면서도 불신하고 힘들어하는 아픔과 상처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처는 양쪽을 다 사랑하고 포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3자가 들어가서 치유를 해야 하는데 화교교회로 초빙 받는 한국인 선교사들이 이런 일에 쓰임을 받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실지로 닫힌 마음을 가지고 있는 인도네시아 중국교회에 선교의 불을 붙이고 전도의 불을 붙이는 일을 한국설교자들이 시작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인도네시아 교회는 주변의 회교권과, 인도 이민자들인 힌두 문화권, 그리고 불교권에 다가가기 위한 교두보 역할을 한다. 위치적으로 아주 중요한 곳이다. 복음으로 인도네시아 교회와 인도네시아의 화교 교회들이 하나로 뜻이 합쳐지면 이러한 엄청난 일을 시작할 수 있고 할 수 있는 인력과 능력이 인도네시아 안에 있다. 이런 일에 한국인 선교사들이 불쏘시개가 되었으면 좋겠다.
복음은 예루살렘의 성령강림 이후부터 2천년동안 계속하여 서진(West-ward)을 해 왔다. 1세기에 예루살렘에 핍박이 일어나서 그리스도인들이 흩어지고 시리아의 안디옥 교회를 설립하여 바울을 초기 선교사로 소아시아 지역(지금의 터키)으로 파송 하면서 이후 복음은 그리스와 로마 그리고 온 유럽을 정복하고 로마 카톨릭이 정치와 종교를 장악한다. 중세 이후 부패한 카톨릭에 대항하여 루터와 칼빈의 종교개혁이 일어나고 소수의 청교도들이 종교의 자유를 위해서 서쪽 미주 땅으로 대서양을 넘는다. 이후 미국에서 복음은 꽃을 피우고 미국은 기독교국가를 이룬다. 이후 복음은 미국 선교사들을 통해서 태평양을 건너서 서쪽으로 한국땅과 공산권인 중국 땅으로 계속하여 꾸준히 서진을 해 온 것이다. 120년전에 한국에 소개된 기독교는 한국사회를 변화시키고 한국교회는 지금 2만명의 선교사를 전 세계에 파송하는 선교강국이 되었다. 중국과 동남아에도 수많은 한국선교사들이 사역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계속 서진을 해온 복음은 지금 중국과 동남아에서 동진하는 거대한 세력인 이슬람권에 막혀있다. 이 거대한 장벽이 두 개의 종교세력이 막다뜨리는 곳이다. 아브라함의 자녀 이삭으로 시작된 기독교와 이스마엘의 후손으로 시작된 이슬람 등 두 개의 가장 거대한 종교들의 영적 전쟁이 일어나는 곳이다. 내 생각에는 이러한 싸움에 앞으로 크게 쓰임을 받을 국가는 준비된 중국교회가 아닐까 생각된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지난 2-30년간 불타올랐던 선교한국의 횃불이 이제는 중국으로, 그리고 인도네시아로 옮겨가는 것 같다. 선교한국은 거대한 중국교회와 동남아 교회를 깨우는 불쏘시개가 사명이었던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중국과 인도네시아의 교회를 이제 선교를 위해 동력화를 계획하신다고 생각 한다. 2천년간 서진해온 복음은 여전히 서진한다. 그리고 서진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는 중앙아시아와 동남 아시아에서 동진하는 이슬람권과의 대항으로 막혀있다. 경도 100도는 현재 아랍에서부터 동진하려는 이슬람권과 지구 한바퀴를 돌아서 서진하려는 기독교가 서로 대항하여 만나는 일선이다. 경도 100도는 중국 땅에서는 중국 서부의 신장 위그르등의 이슬람권과 지하교회가 만나지는 선이고 중앙아시아에서는 중앙아시아의 이슬람 국가들 위로 지나가는 선이다. 또한 동남아에서는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의 위로 지나가는 선이다. 말레이시아 반도와 인도네시아 자바와 수마트라는 다수의 현지인 이슬람권과 이제 성장하는 기독교 교회가 만나는 일선이다. 태국, 미얀마, 베트남등의 불교국가들이 있지만 불교국가들은 기독교에 크게 반감이 없고 선교활동에 제약이 없다. 그러나 나라이름 뒤에 ‘스탄’이 붙은 중앙아시아 이슬람권 국가들과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의 무슬림 세력이 서진하려는 기독교의 진로를 막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어떻게 뚫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까?
이러한 일선에서 서와 동이 통하는 역사적인 도로가 셋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길이 몽골과 중앙 아시아를 통한 초원길(Pasture Road), 중국과 티벳을 통한 비단길(Silk Road), 그리고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섬을 통과하는 바닷길(Marine Road)이다. 이 모든 길들에 이제는 경제적으로 성장한 중국 정부가 중국의 팽창주의, 확장주의를 표방하면서 엄청난 도로 인프라를 깔고 있다. 경제적으로 성장하여 아시아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중국정부가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엄청난 규모의 고속도로를 역사적인 초원길과 비단길에 새로 깔고 있는 것이다. 중국이 이제는 거대한 경제권력과 군사권력을 가지고 아시아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아시아에서 이제는 모든 길은 중국으로 통한다. 중국이 G2로 성장하면서 해외로 자원외교, 개발외교를 꿈꾸면서 엄청난 기세로 확장하고 있다. 중앙아시아 및 아프라카 등에 엄청난 자원투자를 하면서 이곳에 수많은 중국인들이 들어가서 자리를 잡았다. 이러한 엄청난 스케일의 투자는 한국은 상대도 되지 못한다. 또한 말레이시아, 싱가폴, 인도네시아를 통과하는 바닷길의 모든 항만과 배와 인프라들은 화교들이 장악하고 있다. 먼저 글에 일본도 추월한 동남아 화교의 경제권을 설명한 바 있다. G2로 성장한 중국과 이미 100년전부터 동남아 경제를 석권한 화교 세력을 통해서 환경을 조성하시고 향후 선교에 사용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이곳에서 느껴진다.
모든 것을 미리 준비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에 중국의 성장주의가 들어가지 않을 리 없다. 동남아의 화교와 화교교회도 하나님의 계획에 들어갔다고 생각한다. 동남아 화교 후세들이 아버지 세대가 쓰지 않는 만다린어를 뒤늦게 배우려는 열풍이 일어난 배후에는 세계 속에서 높아진 중국의 위상이 있다. 동남아 유통과 경제를 장악한 이들 화교그룹이 복음의 통로 역할을 할 때 이 지역 복음화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할 것이다. 또한 중국교회의 선교 동력이 대단하다. 타 민족과 다르게 중국교회는 베풀기에 아끼지 않는다. 중국교회와 화교교회는 선교를 위한 재정도 있고 돈을 쓸 줄 안다. 중국교회는 현재로는 10만 선교사를 중국서부 지역으로 파송을 한다. 이들은 선교사 파송에 많은 돈이 들어가지도 않는다. 중국교회는 이제 십만 선교사를 넘어서서 백만 선교사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 이제는 중국교회가 세계선교의 장자 역할을 하려는 것이다. 중국의 달라진 위상이 중국교회가 하려는 사역까지 바꿀 것이다. 이제는 모든 아시아가 중국의 세상이 된다. 중국의 경제적, 외교적 영향력 안에 들어간다는 얘기이다. 모든 길은 중국으로 통하는 세대가 곧 올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세대에 이제는 핍박에서 고삐가 풀린 중국교회와 동남아의 화교교회가 선교를 위해 쓰임을 받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것을 위해서 미리 준비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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