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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르단 - 에돔의 흔적을 찾아서 3

      날짜 : 2013.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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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도 가도 끝이 나올 것 같지 않은 바위 협곡의 골짜기를 따라 정신을 잃고 가다 보면, 갑자기 울퉁불퉁하던 바위들 틈에서 사람의 손을 탄 미끈하고 웅대한 건물의 정면의 일부가 수줍은 듯이 바위 사이로 나타났다가 바위틈으로 다시 사라진다. 그런데 숨바꼭질 하듯이 나타나는 템플의 일부가 협곡의 마지막에서 광장으로 이어지면서 전체 형체를 눈앞에 나타내는 그 장면은 처음 방문하는 나의 마음을 울렁거리게 만든다. 볕이 잘 들지 않는 자연 협곡을 3km나 걷다가 갑자기 나타나는 넓은 광장에 비치는 밝은 햇빛과 정면에 보이는 극도로 섬세하게 만들어진 거대한 바위템플의 위용. 이것은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말로 설명이 불가능하다.  50유로의 입장료가 전혀 아깝지 않다. 입이 저절로 벌어져서 다물어지지 않는다. 어떻게 그 옛날에 끌과 망치로 저렇게 똑바른 기둥과 석가래를 조각 할 수 있었을까? 도화지라면 그림을 그리다가 선하나 잘못 그으면 구겨버리고 새로 시작할 수 있다. 석회 덩어리 조각품이라도 부셔버리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바위전면을 도화지 삼아서 만든 작품이기에 한번의 잘못된 망치질로 전체를 망쳐버릴 수도 있는데,,  잘못된 망치질이 한번도 없다. 삐뚤어진 선이 하나도 없다. 통으로 바위에 새겨진 조각이 높이는 40미터에 넓이는 30미터의 작품이다. 기둥은 로마의 코린트 양식이되 기둥이 떠받친 형상은 이집트 이시스 여신과 스핑크스다.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양식, 로마식 건축이 모두 페트라에 있다. 그 엄청난 사이즈와 섬세한 디테일이 모든 사람들을 압도한다. 에돔족속이 2-3천년전에 이러한 건축물은 지어놓고서 스스로 흐뭇해 하고 교만해 할 만도 했다.  우리에게 불가능함은 없다템플의 조각조각이 지금도 관광객들에게 외치는 듯 하다


         


        그들의 건축은 협곡과 완벽하게 조화한다. 다른 민족이 공터에 건물을 쌓아갈 때 에돔족속은 기존의 사암을 조각해내는 방식으로 건축을 했다. 거대한 암벽을 깎아 기둥을 세웠고, 그 안을 파 공간을 만들었다.  문 안에 복도를 따라가면 암벽을 파서 만든 방들이 나타난다고 한다. 그러나 문을 막아놓아서 들어가보지는 못한다. 페트라 시는 대부분의 건물들을 이와 같이 암벽을 파서 만들었으며, 골짜기 안쪽에 만들어진 천연요새인 이 지역에는 극장과 온수 목욕탕, 그리고 상수도 시설이 갖추어진 현대 도시 못지 않은 도시가 유령처럼 버티고 있다. 천연의 요새로 사방이 절벽으로 방어된 이 도시는 마치 지하에 구축된 지하 왕국이 연상될 만큼 신비롭다. 이 도시는 실크로드의 길목으로 수많은 베드윈 대상(boudin trademan)들이 들러가는 상업의 요충지로 한때 크고 번창했었으나, 대상 무역의 쇠퇴와 함께 폐허가 되어 여러 세기 동안 발견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번창할 동안에 이 도시에 산다는 것만으로 얼마나 우월감에 젖었을까? 도시 설계는 색다르다. 템플 광장을 필두로 드넓은 분지 지형에 닿기까지, 도시를 감싼 절벽은 사암을 파낸 무덤으로 빼곡하다. 그 안쪽으로 시장터와 템플, 원형극장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공공영역이 있다. 이제는 무너져 내린 대들보 없이 하늘만을 바치고 있는 기둥들.. 그러한 생활터전을 돌아가면서 산으로 감싸고 있다. 죽은 이의 무덤들이 산 자들의 생활터전을 감싸는 형식이다. 더 돌아보고 싶었지만 오늘로 페트라 관광을 끝내는 그룹들을 위해서 다시 되돌아가야 했다.


         


        저녁을 베드윈 식으로 먹었다. 그러나 옛날의 광야의 베드윈 식사에는 야채가 귀하거나 없었을 텐데 이곳에는 서구에서 온 여행객들을 위해서 야채가 넘쳐난다.  주식은 하얀 렌틸빈(lentil bean)을 으깨서 만든 휴머스(humus) 를 피타(pita bread)에 찍어서 먹는 것이다. 중동에서는 휴머스에 피타브레드는 아침식사를 비롯하여 식사 때마다 항상 떨어지지 않는 주식과 같다. 식사 후에는 페트라 옆에 위치한 호텔에 체크인하였다. 땀과 먼지로 범벅이 된 몸을 씻고서 컴으로 이메일을 체크하고서도 잠잘 시간으로는 아직 일러서 잠바를 걸치고 호텔 밖으로 나갔다. 해가 떨어진 광야의 밤 기온은 낮과는 너무 달랐다. 바람도 심하게 불었다. 잠시 되돌아갈까 망서리다가 하늘을 보니 별들이 손에 잡힐 듯이 가까웠다. 그래서 달빛과 별빛 말고는 아무런 불빛이 방해하지 않는 곳까지 옛 시간 속으로 무작정 걸었다. 어두우니 발 밑에 무엇이 있는지도 잘 분간이 안되지만 그래도 천천히 어둠 속을 발끝으로 더듬으며 걸었다. 어둠에 익숙해지니 달빛의 도움으로 사물이 어렴풋이 분간은 된다. 호텔과 상점 등을 벗어나서 주변의 전기불빛이 전혀 안 미치는 곳까지 걸었다. 저기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불빛을 보고 되돌아가면 되겠다 싶었다. 주변에 늑대인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광야에서 서식하는 동물들의 울음 소리도 들리는 듯 했다. 하늘을 쳐다보니 별들이 손에 잡히는 듯 가까웠다.  구름 한 점 없을 광야의 하늘에 별빛들이 더욱더 밝게 빛났다.  들에 등을 깔고 누우니 별들이 내게로 떨어져 내리는 듯 했다. 시간을 2천년전으로 되돌렸다. “한밤에 목자들이 밖에서 자기 양떼를 지키더니…” 광야에서 지팡이에 의지하여 양떼를 지키던 목자의 심정이 되어 보았다. 이렇게 컴컴한 밤에 양들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야생동물들의 울음소리가 나를 오싹하게 만드는데, 양을 지키는 목자들이 편하게 잠이나 잤을까? 광야의 밤공기의 차가움은 어떻게 견디어 냈을까? 광야의 밤바람에 등을 깔고 15분 누워있기도 내게는 벅차다. 땅에서 올라오는 한기로 어깨가 움추려 들어온다. 목자들은 매일 밤마다 이렇게 누워서 하늘의 별들을 관찰하지 않았을까? 모든 별자리들과 달의 변화와 바람의 변화를 체크했을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별의 등장을 곧 바로 알아차렸을 것이다. 이렇게 민감하게 깨어있는 목자들에게 천사들이 예수의 탄생소식을 전한 것은 당연해 보인다.     


         


        아침에 동이 트면서 아놀드와 함께 둘이서 다시 페트라 등반을 시작했다. 시간이 일러서인지 매표소에는 아직 아무도 없다. 말을 타라고 여행객들을 귀찮게 하는 베드윈들도 아직 나오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반가 왔던 것은 협곡을 미친 듯이 달리는 마차가 이른 아침에는 없어서 느긋하게 방해 받지 않고 협곡을 걸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템플의 광장을 지나서 어제 되돌아 섰던 원형극장에서 아론의 무덤이 있는 호르산이 바라보인다는 페트라의 최정상까지 오르기로 한다. 가파른 벼랑길을 한 시간 가량 올라야 하는 그곳에선 경계 밖으로 아라바 광야가 내려다보인다. 호르산은 어느 산인지 모르겠다.  오르는 계단은 지그재그로 산길을 잘도 깎아 놓았다. 2천년전에 바위를 끌과 망치로 쪼아서 만든 계단 같은데 세월의 힘에 무너져버린 계단은 콘크리트로 덧대어 재생을 한 것이 우스꽝스러웠다. 그러나 계단 보호대는 없다. 조금만 발을 잘못 딪으면 떨어질 것 같다. 요르단 정부는 비싼 입장료로 이런 안전시설을 안 만들고 무엇에 쓰나?  오르는 길에 있는 이정표는 이렇게 기록했다. "세상의 끝을 바라보는 전망대."  그런데 한국의 설악산을 오를 때에 보던 것과 비슷한 돌탑들이 군데 군데 보인다. 주먹만한 돌들을 쌓아서 탑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저것이 예전에 에돔 족속이 쌓은 탑일까 아니면 이 주변에서 살아가는 베드윈들이 쌓은 탑일까? 또는 나 같은 여행객들이 쌓아놓은 탑일까? 이런 산꼭대기까지 나귀를 끌고 올라와서 물병과 기타 기념품을 파는 베드윈들이 있다.  숨이 턱까지 차도록 오른 정상에 서니 억센 바람에 몸이 날아갈 것만 같다. 이곳 정상에는 제단이 있다. 누가 만든 제단일까? 언제 만든 제단일까? 누구를 위한 제단일까? 무엇을 제물로 바쳤을까? 질문은 꼬리를 물고 일어나지만 답을 해주는 이정표나 사람은 없었다.  


         


        하루나 이틀을 더 있으면서 북상하여 모세가 가나안을 쳐다 보았다는 느보산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의 길을 따라서 가 보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여행도 나에게는 사치였다. 바로 인도를 들어가야 하는 스케줄로 인해서 더 지체할 수는 없었다. 그 동안 꿈으로만 동경해 오던 페트라를 이스라엘을 온 김에 들러 본 것도 내게는 축복이었다. 덤으로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헤매었던 광야체험을 한 것도 축복이었다. 이러한 체험을 차분한 글로서 기록할 수 있고 나눌 수 있는 것도 축복이다. 옛 선조들의 영광의 자취를 볼 때마다 참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노력과 땀과 생명들이 저 건축물을 이루기 위해서 죽어갔겠지... 그러나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비롯하여 그 모든 인간적인 영광의 자취들은 들의 꽃과 같이 시간 속에서 사라져 가 버렸다. 지금은 그냥 하루 이틀 구경거리로 족하다. 페트라를 본 첫날은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했지만 이튿날이 되어 다시 가 보자, 페트라의 옛 영광도 그저 그랬다. 그 경이함이 고작 하루를 못 가는 것이다. 에돔이 자랑하던 세일산도, 하늘을 찌르던 교만도 결국은 멸망으로 스스로 막을 내렸다. 그러한 역사 속에서 지금까지 보석과 같이 남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믿음의 사람들에 대한 기록뿐이다.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인생에 만족과 영광을 찾은 에서와 에돔은 결국은 멸망하여 역사에서 잊혀지고, 세상적으로는 비겁했던 야곱과 그 자손들의 처절하게 하나님을 붙잡은 신앙의 기록은 역사의 기록으로 남아있다. 내가 닮고 싶은 것도 대단한 역사적 건축물을 남기면서 홀로서기의 교만한 인생을 살다가 역사 속에서 사라져버린 에돔이 아니라 구차했지만 그래도 중요한 장자의 명분을 에서로부터 쟁취하고 에서를 피해 도망 다녔던 야곱이다.  연약했지만 그래도 인생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알았고 그래서 압복강가에서 끝내 하나님을 붙잡았고 자신과 그 자손들에게까지 신앙의 유산을 남겨준 야곱이 결국은 인생의 승자였다. 적어도 에서와 그 자손들이 남겨놓은 페트라의 유형의 문화재를 직접 돌아본 내게는 인생에서 붙잡아야 할 더 중요한 무형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일깨워주는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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