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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르단 - 에돔의 흔적을 찾아서 1

      날짜 : 2013.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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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들레헴 다음으로 방문했던 목적지는 요르단(Jordan)의 남부에 위치한 페트라(Petra)이다.  페트라는 유네스코(UNESCO)에서 지정한 세계 7대 불가사의(7 Wonders of the World)중 하나로도 알려졌지만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인디아나 존스, 최후의 성전(Indiana Jones-Last Temple)` 영화의 배경으로 인해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탄 장소이다. 영화 속에서 붉은 암벽을 끌과 망치로 거대한 바위 벽을 통째로 조각된 엄청난 크기의 웅장한 템플 광장과 그곳에서 탈출하기 위해 구불구불 좁고 깊게 이어진 붉은 사암의 협곡에서 말을 타고 달리는 장면이 압권이다. 외부의 침략을 거부하는 천연요새 안에서 주전 5세기경 3만이 넘는 인구가 살다가 지진으로 멸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곳은 1812년에서야 스위스 탐험가에게 발견되어 서구세계에 알려졌다. 아직도 80% 이상의 옛 도시가 흙 아래 여전히 발굴되지 못한 상태로 묻혀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곳에 대한 나의 개인적인 관심은 이곳이 성경에서 기록된 에돔족속의 수도였던 세일산(Mt Seir)’ 또는 셀라(Sela)’와 같은 장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고고학자들과 요르단 정부에서는 주전(BC) 아라비아 반도에서 이주해 왔다는 네베티언(Nebatian)’이라는 족속이 실크로드 길목에 건설하여 한때 무역으로 번창했다가 지진으로 멸망한 도시라고 소개를 하는데 네베티언족의 유래나 기록을 남겨놓은 역사적 증거들이 빈약해 설득력이 약하다. 내 생각에는 페트라(Petra)야곱(Jacob)’의 쌍동이 형인 에서(Esau)’와 그 후손인 에돔(Edom)’이 거주했던 세일산이 아닐까? 생각된다. 히브리어로 에서(Esau)’또는 에돔(Edom)’은 붉은색을 의미하며 세일(Seir)’ 또는 셀라(Sela)’는 붉은 바위를 의미한다. 그리스어로 페트라(Petra)’도 바위라는 의미이다. 페트라는 주변이 온통 붉은 사암(sandstone)의 바위산이다. 창세기에서 이삭이 작은아들 야곱’’에게 장자의 축복을 한 후에 분통해 하는 큰아들 에서에게 예언을 한다. “네 거할 땅은 하늘의 기름짐에서 멀고 하늘 이슬에서 멀다” ‘에서의 후예가 황폐한 땅 바위틈 세일에서 칼을 믿고 살아가다가 후에 야곱의 후예에 의해서 멸망할 것을 큰아들을 앞에 두고 예언하는 것이다.  바위틈에 거주하며 높은 곳에 사는 교만한 자여.. ‘에서족속에 남은자가 없으리니..” 오바댜서를 통해 교만한 에돔의 멸망을 예언하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천연의 난공불락 요새와 교역로에 위치해 부를 축적하여 교만함이 하늘을 찌르던 페트라의 옛 주인과 일치하는 예언이다. 그 이후 다윗왕 시대에 에돔은 유다에 의해서 점령되었고 이후 성경의 예언과 같이 멸망하여 역사에서 사라지고 만다. 그 에돔의 수도 셀라와 현재의 요르단 남부 페트라의 위치가 일치한다. 그래서 페트라는 갑자기 근본도 없이 튀어나온 네베티안보다는 에서의 후예 에돔의 근거지였다라고 믿고 싶다.  에돔의 옛 흔적을 찾는 마음으로 페트라를 방문한 것이다.  


         


        내가 멸망한 에돔에 관심이 있는 이유가 있다. 내가 야곱(Jacob)의 형 에서(Esau)’와 같이 쌍둥이 형제의 형으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어려서 교회에서 자라난 우리 쌍둥이 형제에게 교회 어른들은 생각 없이 네가 에서이고, 네가 야곱이구나 라며 우리 형제를 가려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성경은 에서와 야곱 두 형제가 두 민족의 근원으로 태어나기 전부터 리브가의 태 속에서 서로 싸우고 있었다라고 표현한다. 들에 나가 사냥을 좋아했던 에서, 장자의 권한을 멸시했던 에서, 마마보이 동생에게 속임을 당한 에서, 그리고 아버지 이삭에게서 축복을 거부당한 에서이다.  반복해서 그런 말을 들은 나는 내가 그런 에서라고? 그래. 그럼 나는 철저히 에서가 되어주지!” 하는 반발의 마음이 생겼었다. 이것이 왜 어른들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생각 없이 아무 말이나 툭툭 던지는 것을 삼가 해야 할 이유이다. 이런 반발이 에서 콤플렉스라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그러나 이미 내속에서 에서 콤플렉스가 싹터서 하나님에 대한 반발과 반골기질까지 깊게 자리잡았다. 솔직히 기질적으로 보면 교활하고 속 좁은 야곱보다는 호탕하고 통 큰 에서가 내겐 더 좋았다. “하나님은 왜 태어나기도 전부터 에서는 미워하시고, 야곱을 사랑 하셨는가?”는 나에게 꽤 오랫동안 수수께끼였다.


         


        그렇게 우리 형제는 커가면서 서로 다른 길을 걸었다. 나는 기존 질서에 대한 반발과 신앙에 대한 회의로 두 마음을 품은 길을 걸었고, 동생은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하다가 신학을 하고 목사안수를 받고서 선교사의 길을 걸었다. 25년간 선교지에서 사역하던 동생은 현재 Global Partners 라는 선교단체의 국제대표이다. 요즘은 쌍둥이 형제 중 한 사람은 기계설비를 파느라 또 한 사람은 선교단체의 국제대표로 둘 다 세계를 누비며 다닌다. 그러나 지나간 삶을 놓고 보면 비교적 순탄했던 동생보다는 세상에서 수많은 실패와 좌절을 겪고 나서 중년이 넘어서야 비로소 하나님께 항복한 내가 더 야곱과 같은 굴곡의 삶을 살아왔다. 이제서야 하나님이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했다는 성경적 의미를 알겠다. ‘에서는 재주가 많았지만 자신이 넘쳐서 교만했다. 끝까지 자신의 인생에서 하나님은 필요로 하지 않았다.  페트라의 웅장함에서 보듯이 자신의 힘으로 엄청난 건축물을 만들어 내었다. 아니, 예수님이 태어날 당시의 에돔 사람 헤롯왕처럼 유다 땅에 사람들이 역사상 가장 경이로워하는 수많은 건축물들을 남겨 놓았지만 끝까지 자기의 영광만을 추구하다가 죽임을 당했다. 야곱은 우리가 익히 아는 대로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의 선조이다. 이스라엘을 충분히 돌아본 나의 새로운 여행지는 멸망을 당한 이스라엘의 형제 에돔이 이 땅에 남겨놓은 유산을 돌아보는 여정이었다.


         


        그러나 페트라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예루살렘 남동쪽으로 직선거리로는 150km 이나 국경으로 막혀 있었다. 그리고 차 길도 없는 사막과 산맥의 연장이었다. 지금은 50대 중반인 대리점 사장에 의하면 1970-80년대에 이스라엘과 요르단이 서로 적국으로 긴장관계에 있을 때에 유태인 젊은이들 사이에서 밤새 산길을 타고서 목숨 걸고 몰래 요르단 국경을 걸어서 넘어 페트라를 보고서 돌아오면 영웅취급을 받고 잡히면 전쟁포로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요르단과는 관계가 개선된 이제는 유태인들도 자유롭게 페트라에 방문을 한다. 차라리 렌터카로 홍해연안의 에일랏 항구(Port Eilat)까지 차를 몰고 가서 요르단으로 국경을 넘은 다음 아카바 (Aquava)에서 페트라 그릅투어에 참여하는 방안을 고려해 보았다. 차가 있으면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브엘세바(Be’er Sheva)’에도 들러서 4천년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아비멜렉과 계약을 맺었던 우물의 수원이 아직도 남아있는 우물터에 들러 물을 길어서 마셔도 보고 얼굴도 적셔보고 싶었다 (‘이삭도 아비멜렉과 브엘세바우물을 두고 2대에 걸친 계약을 맺는다). 비록 아브라함이 길가는 천사를 대접했던 마무레 상수리나무 숲이 있는 헤브론(Hebron)’과 수시로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던 벧엘(Bethel)’은 현재 팔레스타인 자치지구 벽으로 막혀있어 가보지 못하더라도 이스라엘 땅인 브엘세바에는 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텔아비브에서 에일랏까지 350km네게브사막을 가로지르는 길을 차로 왕복하면서 허비할 시간적 여유도 없었고 사막횡단도 자신도 없어 직접 차로 가는 길은 포기하였다.


         

        대신 텔아비브에서 에일랏까지 비행기로 왕복을 하여 12일의 페트라투어에 참가하는 방법을 택했다. 짐은 텔아비브 호텔에 맡겨두고서 최소한의 백팩(back pack)만을 챙겼다. 그러나 수시로 확인해야 하는 업무를 위해 노트북 컴퓨터를 넣으니 항상 메고 다녀야 하는 백팩의 무게가 여전히 부담스럽다. 텔아비브 지중해 연안의 제 2공항인 도브(Dov)공항에서 새벽 6시에 에일랏으로 출발하는 비행시간을 맞추려고 새벽 3시반에 일어나서 택시로 여전히 컴컴한 새벽공기를 가르며 공항에 도착하니 에일랏에 출장 가는 유대인들과 홍해로 낚시 여행가는 관광객들로 북적거린다. 비행기는 30인승의 구식 프로펠러 비행기였다. 상공에 오르니 그제서야 먼 동편에서 해가 떠 오른다. 아래로 바라보이는 풍경은 오른쪽으로는 네게브 사막과 왼편으로는 산악지대였다. 풀한포기 없는 삭막한 광경이 나타나는데 저 비행기 창문 아래에 보이는 삭막한 곳이 출애굽한 모세가 광야에서 떠돌기를 2년후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아놓고서 가나안 땅으로 12명의 정탐꾼을 보낸 가데스 바네아라고 생각이 들었다. 저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음의 결단을 잘못하는 바람에 38년의 추가 세월을 광야에서 보내고 만다.  갑자기 주변 풍경이 황량함에서 푸르름으로 바뀌어 항구도시 에일랏이 가까이 온 것을 알았다.  푸르고 붉은 빛이 감도는 홍해 바다가 보이는 에일랏과 붙어있는 요르단 아카바 시내 상공을 한 바퀴 선회한 후에 정확히 650분에 에일랏 공항에 착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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