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은 주일이다. 이스탄불에 한인교회가 있는 것을 인터넷에서
미리 찾아두었다. 이스탄불에 교포들이 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국 기업들이 많이 진출해 있어 주재원
코뮤니티는 형성되어 있다. 이들이 세운 교회 같았다. 9시 1부 예배를 위해 8시쯤 호텔을 나섰다. 한국에서 합류한 젊은 친구도 크리스찬이기에 교회에 같이 가자고 권했으나 호텔서 쉬겠다 한다. 두 명이면 택시를 타려 했으나 혼자가 되니 그냥 지하철로 가기로 했다. 찾아가기가
힘들지 않을 것 같아서다. 어제와 같은 방법으로 탁심광장까지 가서는 북쪽으로 가는 지하철로 갈아 탔다. 오즈만베이 지하철역 사거리에 교회가 있는 빌딩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역만리 이슬람 땅에서 한국어로 찬송을 마음껏 소리 내어 부른다는 것이 마음을 흡족하게 하였다. 역시 믿는 자들은 찬송과 말씀을 들어야 양식이 되었다. 선비와 같이
곱게 생기신 주목사님이란 분이 사근사근 말씀을 잘 전하셨다.
오후에는 다시 호텔에
돌아와서 주변의 국립 고고학 박물관을 가 보았다. 터키의 유적은 오토만 왕조시대 말에 영국과 프랑스에
의해 발굴조사가 이루어졌고 대부분 두 나라의 박물관에 소장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이곳에 전시된 알렉산더
대왕의 석관을 비롯해 그리스/로마시대의 컬랙션은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로마 및 초기 비잔틴 시대의 조각과 그리스 시대의 트로이(Troy) 출토품, 사이프러스(Cypress), 시리아(Syria), 레바논(Lebanon)의 토기와 석상 등이 전시되어
있다. 터키는 물론 근교 중동 각지방에서 나온 출토품 2만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바벨론(Bybalon) 문화와 이집트(Egypt) 등 오토만시대의 점령지의 출토품들도 잘도 모아 놓았다.
고고학 박물관 주변에는
좋은 산책로들이 많다. 마침 4월의 첫째 주말은 튜립 축제(Tulip Festival)가 있는 주말이어서 색색의 튜립들이 만개하였다. 빨간색은
말할 것도 없고 온 갓 10여가지 색색의 무수한 튜립들이 고고학 박물관 주변에 피어서 완연한 꽃밭이었다. 가족 별로나 연인들이 튜립 꽃밭에 나들이를 나와서 봄의 시작을 만끽하는 것이었다. 사실 취미도 없고 비슷비슷하고 고리타분한
출토품들을 구경하기 보다는 밖에 나와서 살아있는 꽃과 향기에 취하는 것이 훨씬 더 생산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박물관에서 뛰쳐나와서 튜립 사이의 벤치에
않으니 높고 파란 하늘에 천국이 따로 없었다. 꽃 향기가 수사적인 묘사가 아니라 정말로 사람을 취하게 만든다는 것도 그때야
알았다. 한참을 앉았다가 꽃 따라
향기 따라 정처 없이 걷기 시작했다. 걷다 보니 토프카프 성벽 밖으로 나와서 왼편으로 보스포러스 해협을
보면서 오른편 해안선을 따라서 지중해를 만나서 지중해의 해안선을 따라서 만들어진 산책로를 걷고 있었다. 지중해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면서 걷는 재미가 있었다.
지중해 쪽의 토프카프
궁전의 성벽에는 예전에 대포구멍이었던 빈 구멍들이 잡초로 채워진 것이 오토만 제국의 스러진 영화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여졌다. 오토만 제국의 영화는 600년이란 긴 시간을 지속한 영화였지만 여전히
다른 무수한 제국들처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다. 걸으면서 생각하고 걸으면서 기도했다. 왜
한때 세계를 호령하던 이 민족이 아직도 이슬람의 어둠 속에서 헤메이는가? 왜 종교의 자유가 법으로 보장된
국가에서 아직도 국민의 98%가 무슬림인가? 한 사람 한
사람 만나보면 비즈니스에서는 똑 부러지는 사람들이 종교적으로는 아직도 참 진리를 보지 못하는가? 9-10세기
전 예수의 이름을 앞세워 침략한 십자군전쟁의 여파가 아직도 여전히 기독교에 대한 반감으로 자리잡았는가? 이
민족이 깨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민족이 깨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1년간 이곳에 와서 사역을
했던 아들이 이것을 본 것이다. 선교의 마지막 보루인 이슬람권의 형님 격인 이 투르크 민족이 참 진리를
보게 되고 복음을 받아들여서 나머지 막혀져 있는 이슬람권에 대한 선교를 이들 투르크 전사들이 감당한다면 이슬람권에 빠르게 복음이 전파되는 전환기가
마련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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