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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슬람 선교의 교두보 터키 방문기 2

      날짜 : 2013. 0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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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는 주말만 제외하고는 매일 미팅의 연속이었다. 유적지를 지척에 두고도 주말 전까지는 업무로 바빠서 들러보지 못했다. 어차피 업무에 관한 것은 비밀사항 이기도 하고 재미도 없으니 그것보다는 터키의 역사를 알려드려야 하겠다. 학교 다닐 때는 세계역사는 지명과 인물을 위주로 줄줄 외우고는 시험 후에는 금방 잊어버려 내가 좋아하는 과목이 전혀 아니었다. 그러나 해외로 출장을 다니면서 역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출장지에서 새로운 고객들을 만나면 식사를 같이하면서 탐색전을 하곤 한다. 그 나라의 역사에 대한 이해가 깊으면 그만큼 고객과의 대화의 질이 높아진다. 대화의 질이 높아지면 그만큼 비즈니스의 성사가 쉬워진다. 그것을 깨닫고는 시간을 들여서 방문하는 나라의 역사공부를 하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그러나 작년에 터키에 갔던 아들은 나답지 않게 역사공부를 좋아한다. 물론 1년간 방문했던 터키의 역사도 꿰뚫고 있다. 따라서 출장 전에 아들에게서 터키의 역사를 배웠다. 물론 내가 공부한 것도 있고 현지에서 터키인들에게 들은 것을 검증작업 없이 써 내려가기에 혹 오류도 있을 것이지만 학술지가 아니기에 혹 틀린 부분이 있어도 독자들이 이해 해 주셨으면 한다.  

         

        터키는 아나톨리아 (Anadolu) 반도라 불리는 성경상의 소아시아(Asia Minor) 지역에서 보스포러스 해협(Bosporus Strait)을 건너면 유럽이다. 현재 터키 총면적에서 아시아가 97%, 유럽이 3%를 차지한다. 흑해와 지중해를 잇는 500미터 폭의 보스포러스 해협의 좌우로 아시아와 유럽이 갈라지는 것이다. 보스포러스 해협이 지중해와 만나는 서쪽 끝에 이스탄불이 위치한다. 이곳이 동로마제국 비잔티움의 수도였고 600년 오토만 제국의 수도가 있던 곳이다. 해협을 건너 동쪽 땅은 옛부터 아나톨리아라고 불리었다. 지금도 아나톨리아는 터키면적의 97%를 차지한다. 헬라어에 ‘ia’라는 접미사가 붙으면 이라는 뜻이다. ‘아시아(Asia)’라는 어원도 사실은 헬라어로 ‘Land of Anadulo’ 의 준말이다. 따라서 지금은 아시아가 굉장히 넓은 지역을 의미하지만 원래의 아시아는 터키 땅인 아나톨리아인 것이다.

         

        아나톨리아는 그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일찍이 문명이 꽃피고, 수많은 제국에 의해 주인이 바뀐 땅이다. 그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세계 4대 문명이라 배우는 지역의 유적보다도 오래된 문명의 흔적을 발견하기도 한다. 히타이트(Hetite) 왕국 등 나라들이 일어났다 쓰러지기를 반복하다 BC 550년경에 페르시아 제국(Persia Empire-‘바사라고도 하는 현재의 이란- 성경 에스라서에 보면 바사왕 고레스가 이 시기에 바벨론을 멸망시킨 것으로 나온다)이 대부분의 땅을 차지했고, 서쪽 해안가는 그리스(Greek)의 식민지 영역이었다. 그 뒤 BC 330년에 알렉산더(King Alexander) 대왕에 의해 아나톨리아 지역이 완전히 정복된다. 이 젊은 정복자는 그리스, 이집트, 아시아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했다. 그리고 아나톨리아에 헬레니즘(Hellenism) 문화가 뿌리내린다. 그러다가 로마(Roman)에 기독교를 처음으로 국교로 선포한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 황제가 AD 330년에 그리스어로 ‘비쟌티움(Byzantium)’이라 불리던 도시를 로마의 새로운 수도로 명하고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로 바꾸어 불리었던 것이다. 콘스탄티노플은 최고 전성기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였고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교역로인 실크로드(Silk Road)의 서쪽 종점이었다.

         

        그 후 로마는 동서로 분열하고 콘스탄티노플과 아나톨리아 지역은 동로마제국의 영역이 된다. ‘비잔틴 제국(Byzantine Empire)’동로마 제국(East Roman Empire)’의 또 다른 이름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로마적인 색채는 점점 사라지다가 1071년 중앙아시아 터키민족인 셀주크(Seljuke) 왕조의 침략을 받아서 이슬람화 되어 버린다. 이슬람화가 된 후 유럽의 기독교세력에 의해 4번에 걸친 십자군 전쟁을 치루게 된다. 그리고 이어진 오토만제국도 이슬람을 국교로 600년의 영화를 누리다가 1차 세계대전에 독일에 줄을 잘못서는 바람에 제국의 막을 내리고 터키 공화국의 시작이 된 것이다. 이런 이유로 현재 터키에는 선사 시대부터, 그리스 신전, 로마의 건축물, 이슬람 사원 등 다양한 고대 유적지가 곳곳에 많이 분포돼있다. 이번에는 나는 이스탄불과 앙카라를 제외하고는 터키의 다른 지역은 전혀 들러보지 못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성경의 지명들도 들러 보려 한다.

         

        지금도 터키에는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사도바울이 태어나서 자랐던 길르기아 다소(Tarsus) 가 그대로 남아있다. 사도바울의 선교사역의 베이스교회가 있던 안디옥(Antioch)과 갈라디아 서신의 수신지 갈라디아(Galatia), 에베소서의 수신지인 에베소(Ephesus) 및 브리기아(Phrygia) 등의 사도행전상의 선교지가 여전히 지금의 터키지역이다. 요한이 편지를 보냈던 계시록의 7개 교회인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등의 지역도 모두 터키의 아나톨리아 지역인 것이다. 불행하게도 성경에 기록되고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후 복음전파의 사역이 시작된 이 모든 교회들의 지명이 이제는 모두 이슬람화 된 지역들이다.

         

        이제는 터키 민족에 대한 얘기를 해 보자. 터키인들은 자신들의 사는 지역은 아나톨리아(Anadolu)’ 이지만 민족의 이름은 '투르크(Turk)'라고 부른다. 그리고 투르크인들은 지금의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그 기원을 찾는다. 당시 투르크는 중앙 아시아에 퍼져있던 많은 북방 유목민족의 하나였다. 역사를 배웠다면 과거 고구려와 동시대에 존재했던 '돌궐'이라는 나라를 알고 있을 것이다. ‘투르크돌궐의 다른 발음이며 고구려와 돌궐은 같은 우랄 알타이 계통이다. ‘투르크’를 중국인은 ‘돌궐’이라 표기했고, 우리도 그렇게 불렀다. 돌궐은 중앙아시아 유목민족 흉노가 조상이다. 흉노는 기마와 궁술에 능해 진시황제가 두려워했다는 기록도 있다. 진시황제가 쌓은 만리장성도 흉노를 두려워한 방어막인 것이다.

         

        이후 흉노의 후예인 돌궐과 대한민국의 선조인 고구려는 국경을 맞대고 서로 으르렁거리고 있는 사이 수나라가 중국을 통일하고 힘을 내기 시작한다. 수나라가 강력해지자 드디어 돌궐과 고구려가 손을 잡는다. 손을 잡았다기보다 서로에게 겨눴던 칼을 함께 수나라에게 돌렸다는 게 맞다. 수나라는 껄끄러운 두 나라가 서로 동맹을 맺으려는 상황을 보다못해 상대적으로 더 약한 고구려를 공격하기에 이른다. 수나라는 고구려를 향한 무리한 세 차례 원정으로 급격히 쇠락해 멸망한다. (첫 번째 원정은 우리도 잘 아는 을지문덕의 살수대첩이다) 그리고 중국엔 당나라가 들어선다. 그 시점에서 돌궐은 다시 힘을 내 당나라에 조공을 받아낼 정도로 강력해진다. 그 후 돌궐은 내부 분란으로 서돌궐과 동돌궐로 나뉘게 된다. 이때에도 고구려는 양 돌궐과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애썼다. 고구려의 마지막 왕인 연개소문은 동돌궐의 공주와 결혼을 했고, 서돌궐에도 사신단을 보내 연대를 유지했지만, 그러나 연개소문을 끝으로 고구려도 힘이 약해져서 무너지고 한반도로 축소된다. 강력한 협력국가를 잃은 동돌궐 또한 당나라에 의해 무너진다.

         

        당나라를 견제할 세력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자 서돌궐 또한 당나라에 쫓기듯 조금씩 조금씩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중앙아시아와 코카서스(Caucasus)지방(지금의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젠, 그루지아 지역)을 점령하게 된다. 이때는 비쟌틴 제국도 세력이 많이 위축된 시점이었다. 서남쪽으로 이동한 서돌궐은 비쟌틴 제국의 변방인 아나톨리아 동쪽지역에 자리를 잡는다. 투르크인들이 아나톨리아에 자리를 잡은 이후 주변 아랍권의 이슬람 문화와 종교를 받아들이고 드디어 투르크의 역사가 시작된다. 그 전까지는 이들에게 나라 이름 같은 것도 없고 문자도 없었다. 아나톨리아 지역에 자리를 잡은 투르크 인들은 빠르게 이슬람화 되어서 아랍문자로 역사기록을 시작한다. 투르크인들 중 셀주크 족이 세력을 넓혀 1077년 셀주크 투르크 제국을 건설하고 아나톨리아 지역을 점령하게 된다. 아나톨리아가 본격적으로 이슬람화가 되는 시점이다. 그 이후에 중세유럽의 로마교황청에서 이슬람화한 아나톨리아와 무슬림 손에 들어간 예루살렘의 탈환을 위한 십자가를 앞세운 1096년부터 1200년까지 4차에 걸친 십자군전쟁을 일으켜 예수의 이름으로 수많은 무슬림들을 죽이고 콘스탄티노플과 예루살렘을 놓고 전쟁을 벌이는 역사상 가장 바보 같고 어처구니 없는 십자군전쟁을 일으켜 지금까지 계속되는 아랍권과 기독교권의 되풀이 되는 피의역사가 시작된 중심이 이곳 터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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