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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슬람 선교의 교두보 터키 방문기 1

      날짜 : 2013. 0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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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4월초에 10일간 터키를 다녀왔다. 출장계획 초기에는 터키의 최대도시인 이스탄불(Istanbul) 만을 목적하고 갔으나 현지에서 정보를 얻은 프로젝 수주를 위해 급하게 수도인 앙카라(Ankara)까지 다녀오게 되었다. 앙카라는 아들이 작년에 InterCP 학생선교사로 (SM) 1년간 거주하던 대학이 있는 곳이다. 아들이 몇 년 전부터 이슬람권을 가슴에 품고 기도하더니 작년 한 해를 희생하여 앙카라에서 사역을 하고 돌아왔다. 아들은 앞으로 터키에 되돌아가서 장기사역을 하겠다고 준비 중이다. 물론 무슬림이 다수인 이곳에서 드러내놓고 선교활동을 하지는 못한다. 표면적으로는 대학에서 터키언어 연수였다. 아들이 앙카라에 가 있는 1년이 그렇게 멀고 길게 느껴져서 아들의 안전과 사역의 열매를 위해 기도하느라 어느새 내 마음 한 켠에 자리 잡았던 도시를 아들이 떠난 온 후에야 비로소 방문하게 되었다. 그래도 아들이 한해 동안 발로 걸으며 고생하던 모습을 편지 속에서나 접해야 했던 도시를 직접 방문하여 내 눈으로 돌아보는 기쁨이 있었다. 또한 동로마 비잔틴제국의 수도였고 아름다운 역사의 도시 이스탄불을 돌아보며 지나간 그리스/비잔틴의 역사유물과 한때 지중해 연안의 2/3를 지배하던 오즈만 투르크제국(영어로는 Ottoman Empire로 같은 명칭이다) 600년 찬란한 문화의 흥망성쇠의 발자취를 따라서 걸어 보는 재미도 쏠쏠하였다.

         

        터키는 경제적으로 매우 활발하고 매력적인 시장이다. 유럽의 동쪽 끄트머리에 붙어있지만 유럽이 아니고 그렇다고 아랍국가라고 할 수도 없다. 75백만 국민의 98%가 무슬림 이라지만 그렇다고 이슬람이 국교도 아니고 법으로는 종교의 자유도 있다. 과격한 원리주의 이슬람을 벗어났고 선진국으로 들어가려는 의지가 강하기에 적어도 개방된 도시인 이스탄불에서는 기독교 활동도 허용한다유럽과 아랍권 및 북아프리카 양쪽 문화를 연결하는 브리지로서 문화뿐 아니라 양쪽 시장경제의 활발한 교류지역 이기도 하다. 지난 몇 년간 유럽을 비롯한 전세계가 불경기로 힘들어 할 때 혼자서 7-8%를 웃도는 경제 성장률을 기록한 국가이고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루어낸 나라이다. 다른 아랍국가들과는 달리 땅에서 기름 한 방울 나지 않지만 질 좋은 교육에 열심히 일하려는 국민들의 노력으로 앞으로가 기대되는 나라이다. 한때 동유럽과 중동, 중앙아시아 및 북아프리카를 점령했던 600년 영화의 오토만 제국이 불과 백여년 전에 멸망하였지만 그 자부심과 영향력이 아직도 살아 움직이는 민족이다. 따라서 전략적으로 이곳은 타 이슬람 국가들의 선교를 위한 교두보이다.

         

        지금은 유럽연맹(EU)에 가입하려는 노력으로 하수처리장을 비롯한 수많은 인프라의 투자가 정부주도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 동안 자사에게 직접 시장진입이 막혀 있었다. 터키에서 자사의 판매 대행을 다국적 기업인 OO에서 했었으나 높은 중간마진으로 전년도에 판매 실적이 없다 보니 올해 3월에서야 내게 직접 판매의 길을 열어준 것이었다. 한참 무르익은 시장인 터키가 열리자 3월 남아공 출장에서의 여독이 채 풀리지도 않았지만 일단 가능성 있는 몇 개 현지업체들과 급하게 미팅약속을 만들었다. 그리고 첫 미팅을 맞추기 위해서는 부활절 다음날인 41일까지 이스탄불에 도착해야만 했다. 마침 최근에 터키항공이 휴스턴에서 이스탄불까지 직항 운행을 막 시작하였지만 직항으로는 출발/도착이 하루 늦어져서 암스텔담을 거치는 KLM항공으로 가기로 했다. 출발은 3월 마지막 날 부활절이었다. 오후3시 비행시간을 맞추려면 부활절예배가 끝나기 바쁘게 허겁지겁 공항으로 향했다.

         

        터키와 미국과는 아직도 그리 사이가 썩 좋지는 않은가 보다아니면 터키시민의 미국입국에 따른 까다로운 입국절차에 대한 보복인가? 한국인이나, 일본인, 중국인조차 터키 방문객은 무비자로 쉽게 입국하는데 반해 미국여권을 가진 나는 공항도착과 동시에 입국심사 전에 별도로 3개월 입국비자 스템프를 받고서야 입국이 허용되었다. 두 번씩이나 긴 줄에 서서 시달린 것이다. 작년에 선교를 갔던 아들도 미국여권으로 3개월 비자를 받아 입국하여 1년 장기비자로 전환을 시도하면서 현지에서 추방직전까지 가는 많은 어려움을 당해야 했다. 그에 비해 한국의 본사에서 출장하여 현지 호텔에서 나와 합류한 본사직원은 한국여권으로 별도의 비자도 필요 없이 매우 쉬운 입국절차였다고 약 올린다.

         

        후에 고객에게 직접 들으니 1차대전 이후에 오토만 제국이 멸망하고 열강 사이에서 터키 공화국으로 독립을 위한 전쟁을 할 때에 그리스를 앞세워 가장 강력하게 방해한 나라가 미국과 영국이라고 한다. 당연히 이웃한 그리스와는 지금도 앙숙이다. 그리고 우리는 터키가 피를 나눈 형제국의 사랑으로 한국전쟁에 앞장서서 참전을 하였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전쟁에의 참전은 감정이기 보다는 정치적인 역학관계에서 힘의 균형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마치 한국이 월남전쟁에서 미국의 압박에 의해 수많은 한국군을 참전시켜 엄청난 희생을 치른 것과 같이 터키는 한국전쟁에서 미국 다음으로 많은 15천명의 전투병력을 보내도록 미국에게서 압박을 받고 전투 일선에 배치가 되어 총알받이로 한국전에서 무려 35백명의 전사자가 생긴 것이다. 이것도 또 하나의 미국과의 악연이다.  

         

        처음 방문하는 이스탄불 아타투르크(Attaturk) 공항에 내려서는 터미널을 나가기 전에 달러를 리라로 환전을 하였다. 향후 이스탄불을 여행하려는 사람들은 공항에서는 당장 쓸 돈만 환전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시내에 나가면 커미션 없이도 환전할 수 있는 환전상들이 많기 때문이다. 터미널을 나가면 소수의 현지 사람들이 외국에서 오는 방문객들을 향하여 늑대와 같이 눈을 번득인다.  여행객들을 상대로 유창한 영어로 다가서는 사기꾼들을 조심하라는 경고를 미리 들었기에 일부러 두리번 거리지 않고 곧바로 앞만 보면서 지하철역 사인을 찾아 나섰다. 미리 인터넷에서 보아둔 대로 목적지까지 머리에 입력하였기에 빠른 걸음으로 사인만을 따라서 걸어서 그런지 아무도 처음 방문자 같지 않는 나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공항 지하철 역에 가서 티켓을 사느라 역지기의 도움을 받았을 뿐이다. 공항 지하철로 연결되는 구시가지 술탄아흐멧 (Sultanahmet) 지역의 종점까지 가서는 택시로 갈아타고 호텔로 향하였다.  

         

        추천 받은 호텔은 이스탄불 구시가지 비잔틴 문화의 잔재인 아야소피아(Hagia Sophia) 성당(박물관?) 앞에 있는 동양호텔(Dong Yang Hotel)이다. 터키에서 가장 유명한 문화재 아야소피아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이 방이 20개 남짓한 호텔은 한국의 하나로(Hanaro) 여행사를 옆에 끼고 있는 한국인 소유의 호텔이다. 아니 가기 전까지 한국인 소유로 알았다. 그랬는데 의외로 한국말이 유창한 터키 아저씨의 소유였다. 이 한국사람 뺨치게 한국말이 유창한 터키 아저씨가 여행사마저 운영을 하면서 한국인들에게 카파도키아 등 현지 여행 펙키지를 판매하고 안내까지 하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3년을 거주하고 부인마저 한국여자라는데 어찌나 한국말이 유창한지 얼굴을 보지 않고 귀로만 들으면 영락없이 한국사람이라고 속을 것이었다. 그런데 이 백안의 한국말 잘하는 터키인이 의외로 영어는 매우 서투르다. 그리고 호텔보다는 여행사 업무로 바쁘다. 대신 호텔 프런트에서 교대로 일하는 착실한 터키청년 두 사람이 영어도 잘하고 얼마나 잘 도와주는지 터키 방문기간 동안 이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예상한대로 호텔의 투숙객들이 대부분 한국인들이었다. 호텔에서 준비한 아침을 먹다가 마주쳐서 인사를 나누는 신혼부부들도 많았다. 터키가 한국에서는 인기 있는 신혼여행지란다. 마주치는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관광객들이지 업무로 인한 출장자들은 우리 밖에는 없었다. 호텔 바로 앞에는 트렘(Tram)이 지나가서 트렘을 타고서 신시가지까지 연결되거나 또는 지하철로 연결되었다. 어차피 구시가지 호텔 앞에 대부분의 역사적 유물들이 걸어서 가는 거리 안에 있었다. 걸어서 갈만한 거리의 한국식당도 두 군데나 있었다. 호텔이 조금은 협소한 감이 없지 않지만 비교적 깨끗하고, 위치적으로 매우 편리하였다. 호텔 라운지에 방명록까지 있어 각처에서 방문한 한국사람들이 끄적여 놓은 낙서와 써놓은 여행지 팁을 읽는 것도 재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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