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formation; 생각하는 행동
1994년도에 저는 중국의 연변과 우스벡키스탄에 단기선교를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1997년도에는 대학생 봉사단 자격으로 러시아 연해주에 다녀왔습니다. 그 여정 속에서 저의 가슴을 울리게 하는 단어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조선족” 그리고 “고려인” 이었습니다. 이 호칭은 이들이 어느 지역에 사는 한국인(조선인)인지를 말해 줍니다. 1900년대 전후로 중국에 이주해서 사는 한국인을 “조선족”이라고 하고, 러시아에서 사는 한국인을 “고려인”이라고 합니다. 그들에게 3-4대의 세월의 흐름은 문화와 그 뿌리까지 잊혀지게 했습니다. 그런데 서로 다름 속에 “하나 됨”을 찾게하는 매개체가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한국 말- 같은 언어”입니다. 한 다큐멘터리를 통해 보았던 한 할머님의 눈물이 기억납니다. 잊어버렸던 조선말로 자신의 이름 “정 마리아”라는 단어를 쓰며 눈물을 흘리시던 고려인 할 머님. 한 민족이었던 봉사단의 섬김과 잊혀졌던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며 추억하는 일 가운데 할머님의 마음에서 쏟아지는 그리움이 눈물로 맺혔었지요.
지난 금요일10월31일은 497주년 “종교개혁일”(Protestant Reformation) 이었습니다. 1517년 10월 31일, 독일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 수도사이자 비버베르크 대학의 강사였던 마르틴 루터는 자신의 대학 내 교회 문에 95개조 반박문을 게시함으로써 종교개혁 운동의 불을 붙였습니다. 이 95개조 반박문은 당시 로마 가톨릭이 실시하던 면죄부 판매의 행태를 비판하고 이 행태의 근거가 되는 여러 신학적 전제들의 오류를 지적함과 더불어 이와 같은 잘못된 행태를 조장하는 로마 가톨릭의 제도적 반성을 촉구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런 과정 속에서 교회는 다시 “말씀으로 돌아 가야 한다”는Reformation이 시작된 것입니다.
또한 지난 금요일은 “할로윈데이”이었습니다. 종교개혁일이 이 광란한 축제로 말미암아 잊혀져가는 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 캔디를, 펌프킨을, 나무에 걸리는 거미줄을 갖다버리자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루터와 칼빈과 쯔빙글리 같은 종교개혁자들을 기념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왜 기념하고 있는지 생각해보자는 것입니다.
이제. 달라진 우리를, 우리의 문화를, 우리의 뿌리를 어떻게 찾아나가야 할까요. 우리의 뿌리, 우리의 살아있는 언어인 “말씀”으로 돌아가는것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지금 당장 거창한 개혁을 이루자는 것이 아닙니다. 루터가 그렇게 반박문을 붙였을 때 그것이 이처럼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는 개혁이 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작은 “생각하는 행동”으로 인해서 세상은 변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에게 우리 삶의 뿌리, 근본을 찾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무엇이 여러분을 가고 서게 하고 웃고 울게하며 살아있
게 합니까? 우리의 삶속에서, 매일의 일상속에서 여러분이 해내야 할 "생각하는 행동"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삶의 중심이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다시 “근원”으로 돌아 가야 합니다. 말씀과 더불어 살고 있나요? 말씀으로 더불어 기뻐할 수
있나요? 아침에 눈을 뜰 때 말씀으로 시작하시고, 저녁에 눈감을 때 말씀을 묵상하십시오.
그것만이 우리를 살게하며, 의미가 되며, 만족을 줍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백성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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