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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를 돌보시는 날에

      날짜 : 2014.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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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며칠 , 아내가 저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언제 외로웠어요?
        “응.....고등학교 .."  “그때 외로움을 누구와 나눴었어요?


        “아니, 그런 사람들하고 나눠! “그래서 당신은 외로운 청년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거예요. 혼자 외로움을 달랬으니 외로움을 설명할 없잖아요. 외로움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빈자리를 채우면 빨리 외로움을 극복할 있는데 말이지요”짧은 대화 였지만, 외로움을 나눌 있다? 라는 것을 그리고 외로움을 설명할 있다?라는 것을 새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외로울 어떻게 하시나요? 특별히 생각하지도 못했던 문제에서 발생하는 오해로부터 오는 단절이나 외로움 같은 것들을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사람들, 멘토나 경험이 많으신 어른, 목사님, 친구들을 찾아가서 도움을 요청하시나요? 물론 이러한 방법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중에 하나가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방법이 깊이 있는 터치와 치유를 위한 완전한 해결책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로부터 얻는 위로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상담해 주시는 마저도 부족한 인간인지라 실수하거나 실언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카운셀러는 오직 “성령님” 밖에 없습니다. 누가복음 1장을 보시면, 세례요한을 임신한 엘리사벳과 성전에서 봉사하던 그녀의 남편 제사장 사가랴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들에게 나타난 현상은 사람들에게 설명해서 풀어놓을 그런 상황이 되지 못했습니다. 남편은 성전에서 봉사하다가 말을 못하는 ( 1:20) 받았고, 그런 와중에 나이든 아내는 임신까지 했으니 이것은 그대로 “망신” 자체였습니다. 이런 엘리사벳과 사가랴는 5개월간 칩거합니다( 1:24). 이러한 과정이 그들에게는 참으로 힘든 과정이었지만, 그들의 고백이 마치 “정금같이 나오는 기적( 23:10)”에 대한 것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주께서 나를 돌보시는 날에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움을 없게 하시려고 이렇게 행하심이라…”( 1:25).


        사랑하는 지체 여러분, 혹시 외로움의 터널을 지나시는 분이 계십니까? 기간이 참으로 길고 어둡게 느껴지십니까? 오늘 성령님을 만나십시오. 사가랴와 엘리사벳처럼 아픔의 터널이 “주께서 그들을 돌보시어 부끄러움을 치유하시는 기간”이 되었던 처럼, 여러분도 이러한 주님의 돌보심이 있는 나날을 카운셀러이신 성령님과 함께  지내 보시는 것은 어떠신지요? 그렇게 하신다면, 외로움의 훈련이 힘들고 고되지만은 않은, 어쩌면 즐겁고 흥미로운 과정이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백성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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