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1호/2014.10.05
칼럼 7 감 동 (感 動)
기타의 여섯현을 조율하는 방법 중에 하나가 있습니다. 기타를 좀 치는 분이라면 아실것입니다. 그것은 윗 현과 아랫 현의 떨림현상을 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6현의 다섯째 플랫을 잡고(뮤트, 소리없음을 만들고) 아래 5현을 쳐서 뮤트된 6현의 소리에 서로 맞춰지게 합니다. 여기에서 6현은 그냥 뮤트만 시키고 아래 5현을 조율하여 소리를 맞출 때, 두개 현이 같은 소리를 내게 됩니다. 그 때가 위, 아래의 음이 맞춰진 때입니다. 이러한 방법으로 기타의 6개의 현을 조율할 수 있습니다. 이와같이 하나만 음이 명쾌하다고 해서 조율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아래의 현에서 떨림이 있어야 합니다. 5현의 조율로 인해서 6현이 같이 울릴 때 그것이 정확한 동률의 음을 잡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생각지도 않은 사람으로부터 “감동 받았다”라는 표현을 듣습니다. 그런데 감동이라는 것은 한쪽만의 울림으로 진정한 감동이 될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마치 기타 6현이 자신의 소리를 내지 못하게 손으로 뮤트(Mute,소리없음) 당하고 있지만, 5현의 알맞게 조율된 울림만으로도 6현이 자연스럽게 함께 울려지는 것처럼 서로 주고 받는 것이 바로 “진정한 감동”일 것입니다. “감동을 주는 것”과 “감동을 받는 것”이 함께 조화가 될 때 “진정한 감동”은 일어납니다.
감동은 위 아래가 같은 떨림이 있어야 합니다. 상대방을 너무 사랑해서 진심으로 감동주길 원하지만, 감동을 원치 않는 자에게는 무례가 될 수 있습니다. 반면에, 감동받는 사람이 자신의 것을 내려 놓지(뮤트) 않고서 상대방의 행동만으로 감동을 기대하는 것은 이기적인 것입니다. 상대방의 낮아짐(뮤튜)에 맞는 소리로 서로가 함께 다가 갈 때 아름다운 하모니는 이뤄질 수 있는 것 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으로 감동시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서 직접 낮아짐으로(죽으심, 소리없음) 오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낮아지심(죽으심, 소리없음) 앞에 나의 소리를 울려 그분의 온전한 소리로 맞추는 것이 믿음이며, 구원의 첫 걸음인 것을 압니다. 그분의 낮아짐에도 불구하고, 소리를 맞춰드리지 못하는 것은 결국 불신앙입니다.
상대방의 행동을 통해서 내가 감동받을 것이라 기대하지 마십시오. 먼저 나의 소리를 죽여야 합니다. 그러면 상대방은 나의 숨어 있는 소리에 맞춰서 자신의 소리를 조율할 것입니다. 나의 소리가 상대방을 위해 낮춰질 때, 상대방은 자신의 소리를 변화 시켜 낮춰진 나의 소리에 맞추게 되고 이것은 "진정한 감동”을 만들어냅니다
오늘도 “서로의 낮아짐”으로 온 마음을 전율케 하는”감동”을 함께 경험해 보시지 않겠습니까?
백성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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