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바울에게는 육체의 가시가 있었습니다.
물론 상징적인 표현이기에 나무나 꽃에 있는 그런 가시는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보기에나 본인이 느끼기에
분명 아픔을 주는 것이 있었기에 그는 그것을 가시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이 무엇일까? 궁금해 하면서 여러 추측을 해 보았습니다.
안질이니 육체적 결함이니 등등 을 말하지만 모든 것이 분명치 않습니다.
다만 사도바울에는 짐이었고 사람들에게는 조롱거리였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이것을 좋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가시를 없애 달라고 세번 씩이나 기도했다고 합니다.(고후 12장 8절)
하지만 하나님은 사도바울의 기도대로 응답하시지는 않았습니다.
그것은 가시가 육체에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기도가 응답되지 않았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그 속에서 기도 응답의 신비를 발견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의 능력이 그 가시를 통해
사도 바울의 인격과 사역에 머물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고후 12장 9절 )
그리고 그것을 사도 바울은 크게 기뻐하면서 자신의 약함(육체의 가시)을 자랑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모두가 육체나 삶에 가시가 다 있습니다.
아픔이 될 수도 있고 약함이 될수도 있고 흔히 말하는 컴플렉스도 될수가 있습니다.
사람의 비방과 조롱거리도 될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왜 없어지지 않을까요?
하나님이 우리를 미워하셔서가 아니라 이것을 통해 우리가 교만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더욱 붙들어 결국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아픔을 통해 얻는 은혜 그것이 그리스도 사역자와 백성들의 능력이 됩니다.
노정각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