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홉은 어디에 있는가? (눅17:11-19)
정영락 목사
첫째,
신앙은 전도에서 시작됩니다. 전도는 예수님의 소문을 내는 것입니다. 나병환자는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만나 환영하러 나갔습니다. 전파하는 자가 없으면 들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마지막 날에 예수님에게 2가지 질문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는 Being 의 열매입니다. 얼마나 주님을 닮았는가를 물으실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Doing
의 열매입니다. 주님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를 물으실 것입니다. 누구에게 복음을 전했는지를 물으실 것입니다.
둘째, 신앙은 기도를 통해서 자랍니다.기도 시간과 기도 응답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은 자라게 됩니다. 10명의 나병환자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기도한다. 이것은 매우 좋은 기도 내용입니다. 이 기도는 자신을 정직히 드러내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들은 소리를 높여 기도했습니다. 좋은 기도의 자세입니다. 부르짖음은 간절함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부르짖는 자에게 응답하시고 그들이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보이신다고 하셨습니다.
셋째, 신앙은 순종을 통해서 성숙합니다.성숙은 양적으로 폭발적인 성장을 의미하고 질적으로 깊이 자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10명의 나병환자는 몸에 어떠한 증거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너희 몸을 보이라는 말씀에 의지하여 제사장에게 갑니다. 그때 가다가 깨끗함을 받게 됩니다. 우리는 보여주시고, 들려 주시고, 만질 것을 주면 순종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먼저 가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보게 되고 들리게 되고 만지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때 신앙이 성숙합니다. 순종하여 가다보면 깨끗함을 얻게되고 성숙한 신앙을 가지게 됩니다.
넷째, 신앙은 감사로 완성됩니다.오늘 본문의 강조점은 4번째에 있습니다. 고난 가운데 부르짖는 기도는 10명이 합니다. 그러나 고침을 받은 후에 돌아와 감사로 큰 소리로 영광을 돌리는 사람은 1명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10% 안에 들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린 것은 한번의 감사자가 아니라 평생 감사하는 예배자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때 예수님은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하면서 찾으십니다. 섭섭해서가 아닙니다. 그들에게 더 큰 복이 있는데 누리지 못하는 안타까움입니다. 병고침은 Zero Point 입니다. 병 든 것이 마이너스라면 병고침을 받고 이제부터 플러스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9명은 다시 마이너스로 가버립니다. 안타까워 하십니다. 주님은 감사하는 자에게 구원을 주십니다. 육체 뿐 아니라 영혼을 구원해 주십니다. 나는 9명에 속합니까? 아니면 돌아온 1명에 속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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