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문 (눅 13:22-30)
정영락 목사
첫째, 여유에서 선이 나오고 분주함에서 악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삶의 목표와 목적지는 분명했습니다. 예루살렘이었고 십자가였습니다. 그렇다고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바로 가지 않았습니다. 여유를 가지고 각 성과 각 마을을 다니면서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곳에 가서 가르치셨습니다. 프린스턴 대학에서 했던 실험에서 우리가 알 수 있듯이 여유가 있는 그룹은 63%, 약간 바쁜 그룹은 45%, 매우 바쁜 그룹은 단 10%만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도왔습니다. 여유에서 선을 행하고, 분주함에서 선을 행하지 못합니다. 여유는 게으른 삶은 아닙니다. 열심히 살지만 하나님께 맡기고 인도함을 받는 삶입니다. 이때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분주함 자체는 악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 없는 나만의 분주함이 문제입니다.
둘째 좁은 문은 자기를 부인하는 문입니다. 자기 존재를 점검하는 문입니다. 사람들은 좁은 문을 자기 열심과 노력과 수고로 오해합니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가기 위한 인내와 수고와 노력을 좁은 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이것은 넓은 문입니다. 성경은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 넓은 문이고 찾는 사람이 적은 것이 좁은 문이라고 했습니다. 좁은 문은 자기를 부인하는 곳입니다. 좁은 문은 마치 죽음과 같이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는 문입니다. 오직 변화된 자기 존재만을 가지고 갈 수 있는 문입니다. 에리히 프롬은 행복은 더 많이 가지는데 있지 않고 더 깊이 존재하는 데 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부분에 가장 아름다운 모델을 보여 주십니다. 자신을 비워 종이 되어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기 위해 자신에게 유익한 모든 것을 해로 여기고 배설물로 여긴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이 좁은 문을 통과한 자입니다.
셋째 좁은 문은 아는 자에게만 열리는 관계의 문입니다. 우리는 문을 아는 사람에게만 열어줍니다. 모르는 사람에게 열어 주지 않습니다. 오늘 성경도 그들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문을 열어 줄 수 없다고 합니다. 무리 가운데서 예수님을 만나면 주님은 모른다고 하십니다. 일대일로 개인적으로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개인적으로 그분을 영접해야 합니다. 그때부터 주님은 그를 압니다. 주님을 알게 되면 불법과 악행으로부터 멀어지게 됩니다. 우리 주님은 욥을 잘 아시고 사단에게 까지 자랑하셨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우리를 살피시며 예배하는 자를 찾고 계십니다. 자신을 아는 자를 찾고 계십니다. 결론적은 좁은 문은 열렸을때 들어가야 합니다. 닫히면 열리지 않는 문입니다. 오늘이 바로 구원의 날이고 오늘 바로 은혜의 날입니다. 지금이 골든 타임입니다. 지옥은 늦었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가는 곳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최선을 다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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