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
정영락 목사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가 왜 복이 있습니까?
첫째, 핍박을 당하는 자는 참된 성도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두움은 빛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가인이 아벨을 미워했고 살인했던 것입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이 세상에 속하지 않고 예수님께 속했기 때문에 미움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경건하게 살려고 하는 자는 핍박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참된 성도의 삶에는 세상의 미움과 거절과 핍박이 있습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의를 위한 핍박은 바로 복음을 전파하다가 받는 핍박입니다. 선지자들의 박해가 바로 그와 같은 박해였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예수님과 하나님의 도구가 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 복음을 전하다고 박해가 오면 이것은 너무나도 큰 감동과 감격이 됩니다. 복음을 거부하던 나를 이렇게 복음을 도구로 사용하심이 너무나 큰 기쁨이 되고 영광이 됩니다.
둘째, 핍박을 당하는 자에게 천국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것을 위하여 영원하지 않는 것을 버리는 것은 결코 아까운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선택을 위해서는 중요한 포기를 해야 합니다. 영원한 것을 소유한 사람은 이 세상의 것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죽음을 두려워하지만 천국을 소유한 자는 죽음이나 박해나 핍박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올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태양을 본 사람은 촟불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하늘의 영광을 본 사람은 이 세상의 평안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제자들이 모두 순교할 수 있었던 이유는 천국(변화산)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고난의 자리에 함께 하십니다. 스데반이 천사의 얼굴을 할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그때문입니다. . 순교와 박해와 핍박의 시간은 동시에 주님이 함께 하시는 천국이 느껴지는 시간입니다.
셋째, 큰 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천국에 들어갈 뿐만 아니라 천국에 들어갈때 큰 상을 받게 됩니다. 성경은 분명히 천국에 들어갈때 각자의 삶에 따른 상이 있다고 말합니다. 성도는 이땅에 살지만 저 천국에 자신이 살 집을 건축하는 자들입니다. 고전 3장에 보면 각자 다른 재료로 자신의 집을 짓습니다. 금 은 보석 나무 풀 짚으로 자신의 집을 지어갑니다. 이 집의 준공검사는 불입니다. 불이 지나갈때 재료가 다 사라지는 집이 있고 재료가 그대로 남아 있는 집이 있습니다. 사라지는 집은 부끄러운 구원을 받습니다. 사라지지 않는 자는 큰 상을 받게 됩니다. 준공검사의 불은 바로 주를 위한 이땅에서 수고와 고난입니다. 주를 위해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 자들에게 선지자들의 상을 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