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변화
김영진 목사
사람은 변화를 원하지만 변화를 원하지 않는 이중적인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또한 변화된 것 같지만 실상 변화되지 않은 모습이 여전히 성도의 삶에서 나타납니다. 베드로와 바나바는 복음의 진리를 이방인들에게 전하기 위해 부름 받았지만 유대인들의 눈을 의식하여 이방인들과 식사 자리를 피했습니다. 복음의 진리로 차별없이 주어지는 은혜를 경험했지만 여전히 그들은 자신들의 명예와 평판을 의식한 채 누군가를 차별했습니다.
사람이 쉽게 변하지 않는 이유는 변화에 대해서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익숙해져 있는 삶을 깨는 변화가 익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본전이 얼마인데’에 익숙해져 있기에 자신이 그동안 구축하고 투자해 놓은 것을 포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신의 오랜 잘못된 습관이 비합리적이다고 판단하면서도 스스로 합리화하며 대견해 하는 것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바리새인과 유대인들이 그토록 자신들의 율법을 지키고자 한 것은 그동안의 자신만의 본전을 결코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과 유대인들이 변화를 싫어한 것은 아닙니다. 변화하기를 원했지만 그 방법이 잘못되었습니다. 율법으로 의로워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자신들의 본전으로 변화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가능함을 주장합니다. 다시 말해, 변화는 자신의 본전으로, 자신의 의로움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으로만 가능합니다. 변화의 핵심은 변화를 위해서 내가 얼마나 노력하고, 수고하고, 개선되었는지는 시간과 양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우리를 유일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복음의 진리와 긴밀한 연결을 가지고 있는 변화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히는 시간을 반드시 요구합니다. 예수님만 지는 십자가가 아니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입니다. 나 같은 죄인을 위해 독생자 아들을 십자가에 내주시기까지 우리 자신이 심각한 죄인인 사실을 겸손히 고백해야 합니다.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은 당장에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울 수 있지만 성도에게 있어 올바른 변화의 출발임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의 죽으심을 통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시며 성도의 삶을 새롭게 변화시키기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은혜를 힘입어 이제 내가 사는 것이 아니고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는 삶의 큰 변화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신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