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락 목사
경건한 사람은 혼자 있을 때 자신의 마음의 흐름을 살피고, 여럿이 있을 시에는 자신의 혀의 흐름을 살핍니다. 혼자 있을지라도 하나님을 생각하며 조심하는 자가 경건한 자이고, 여러 사람과 대화에 그 혀의 말에 은혜가 있을 때 그가 경건한 사람입니다. 야고보는 말에 실수가 없으면 완전한 자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왜 이렇게 언어의 중요성을 강조합니까?
첫째 말은 듣는 사람의 운명과 미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말 한마디에 하늘을 나는 기쁨을 누리기도 하고 말 한마디에 며칠을 식음을 전폐하며 지옥의 고통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야고보는 혀는 곧 불이라고 했습니다.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는 지를 이야기 합니다. 또한 혀는 배의 키와 같다고 했습니다. 키는 작은 것이지만 배 전체의 방향을 결정합니다. 이와 같이 혀에는 부정적 능력과 긍정적 능력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알 때 지혜로운 자는 말을 하기를 조심합니다. 깊이 생각하고 말 합니다. 침묵의 영성을 통해서 몸의 양약이 되는 좋은 언어를 사용하려고 노력합니다.
둘째 말은 하는 사람의 운명과 미래를 결정합니다. 말은 하는 사람의 인격이고 신앙이고 미래의 운명입니다. 언어를 조심하면서 하는 말이 나의 참된 모습이 아닙니다. 평상시 편한 이웃과 나누는 대화가 바로 나의 진짜 모습입니다. 이사야는 자신이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 이유는 성전에 들어가 보니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충만하게 있고 천사들이 하나님 앞에 거룩하다 찬송을 부르고 있습니다. 이사야는 선군 웃시야의 죽음으로 인하여 절망하고 낙심하고 낙담하여 불신앙적인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것을 보고 그는 자신이 입술로 지은 죄가 생각이 난 것입니다. 그는 화로다 내가 망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자신의 말과 자신의 신앙과 자신의 운명을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의 위대함이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말과 자신의 신앙과 자신의 운명을 일치시키지 못합니다. 그래서 함부로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다릅니다. 80년을 준비시켜 40년동안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인도했던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단 한가지입니다 말에 실수를 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패역한 세대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 부분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나의 말이 내 신앙이고 내 인격이고 내 미래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것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이사야는 자신의 입술이 제단 숯불에 됨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그 입술이 자유하게 됩니다. 그는 자신이 주인을 통해 완전히 언어가 달라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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